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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위보다 무서운 것은 빛이 없는 것
작성자 강금주 이메일 samushil@gmail.com
작성일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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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제라니움이 활짝 핀 집을 꿈꾼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제라니움이 어떤 꽃인지 몰랐지만 어린왕자가 '멋진 집'을 표현할 때 
창가에 제라니움이 피어있는 집이라고 했다. 
그 후로 나도 언젠가는 창가에 제라니움이 예쁘게 핀 집에서 살아야지 하는 
막연한 꿈을 가졌다. 

서른넷에 신랑이랑 한 달짜리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자정 가까이 내린 암스테르담은 새벽 2시가 되었는데도 낮처럼 밝았다.  백야였다. 
그 밤길을 걸으며 레이스 커튼이 얌전하게 내려진 창가에 제라니움이 조용히 피어있는 집들을 만났다. 
동화 속의 집처럼 예뻤다. 
그 밤에 레이스 커텐 아래 제라니움이 피는 창을 가진 집에 살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으로 바뀌었다. 

열여섯에 씨앗이 심긴 꿈이 드디어 올해 싹을 틔웠다. 
제라니움을 여덟개 주문했다. 
햇볕이 잘드는 창 앞에 두고 언제 꽃을 피워줄까 기다렸다. 
한 달이 되기 전에 연분홍 꽃이 수줍게 올라왔다.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일곱 명의 사람들에게 우리집 유리창에 
제라니움이 피었다고 자랑했다.  
제라니움 한 송이가 그렇게 세상을 떠들석하게 할만한 뉴스는 아니다. 
 다만 나에겐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소식이다. 
제라니움은 두 번 더 나에게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자랐다. 
며칠에 한 번씩 물도 주고,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초록색 식물영양제  튜브도 꽂아주고, 두 번은 화분갈이도 해주면서 
다시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나 싶었는데 어느 날 아침 찬바람이 쌩 불어왔다. 
창 가까이 가니 찬기운이 손에 느껴졌다. 
너무 추워서 제라니움이 얼어버릴지도 몰라 하는 조급함에 
모두 다이닝룸에 있는 장식장 위로 자리를 옮겨줬다. 
창에서 오는 찬기운과는 거리를 두고 훈훈한 기운이 제라니움을 보호하리라 생각했다. 

딱 사흘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새로 바꾼 우울증약에 적응이 안 되어 낮이면 난 흐느적거리며 
몸보다 마음이 기운을 차려주기를 기다리느라 제라니움에 눈을 주지 못했다. 
마음이 멀면 눈도 멀어진다. 맞다. 
사흘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라니움 잎사귀들이 뜨거운 물에 데쳐놓은 것처럼 시들어가고 있었다. 
"왜 제라니움이 갑자기 다 죽어가지? 내가 너무 추울까봐 안으로 옮겨줬는데..."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쪽지가 대답했다. 
"엄마 거기는 빛이 안들어오잖아요. 그애들은 쨍쨍한 햇빛을 받아먹고 사는데 어두운데 두니까 잎이 죽어버리죠."
"그래도 여긴 안 추운데. 창가는 너무 추워서 얼까봐. "
"그래도 햇빛 잘 받는 곳으로 다시 옮겨주세요."

나의 단순함 때문에 대부분의 제라니움이 화려했던 잎사귀를 잃었다. 
거의 나목이 되다시피 한 제라니움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식물에게 추위보다 무서운 것은 햇빛이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추위는 견딜 수 있지만 빛이 없으면 생명을 위협받는다는 것을. 

우울증은 나에게 빛이 없는 어둠이 좋다고 속삭인다. 
움직이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렇게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나의 꿈과 희망과 열정이 스러지는 것을 지켜보라고 한다. 
물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빛이다. 긍정적인 생각이다. 
때로는 가만히 있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만나고 약을 먹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 말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서 서로를 살피며 생각을 나눠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의 힘이 없는 것이 우울증이다. 

오늘은 다시 의사를 만나고 온 날이다. 
병원이 옆 건물이다는 것은 내가 의사를 만나러 가는 데 용을 쓰지 않아도 된다. 
걸어서 딱 5분 30초. 500 걸음을 안 걸으면 의사 앞에 앉을 수 있다. 
"지난 번 약은 효과가 없었던 것 같으니까 약을 다시 바꿔보죠. 
효과있는 약으로 바꿔서 조정해 가면 되요. "
"우울증이 약을 먹는다고 없어질까요?" 무기력한 나의 말에 의사선생님은 말한다. 
"우울증은 치료될 수 있는 병입니다. 약을 먹으면 좋아집니다. 
효과있는 약으로 더 높여서 바꿨으니 아마 잠도 잘 주무시고 기분도 나아질거에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꼭 해야 할 일을 안하고 싶어서 안해도 되는 이유를 찾느라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요."
"약을 먹으면 좋아질 거에요. 2주 후에 다시 뵐께요."
"네."
난 말 잘듣는 학생처럼 대답한다. 
나에게도 찬기운이 없는 어두운 곳보다는 햇빛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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