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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런던 거리에서 10여분 동행한 여인
작성자 강금주 이메일 samushil@gmail.com
작성일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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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Cinnamon Wharf 알아요?"
사막에서 생떽쥐뻬리에게 다가온 어린왕자의 질문처럼 
내 또래의 아시안 여인이 갑자기 앞에서 묻는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Messiah를 귀에 가득 담고 있던 난 이어폰을 빼고 
다시 묻는다.
" 'Cinnamon Wharf' 알아요?"
"난 그게 어디인지 잘 모르지만 내 전화기에 지도가 있으니 찾을 수는 있을거에요."

전화기에 다운 받아둔 "Citymapper" 를 연다. 

" 적어도 런던에서는 어디를 가든 이것만 켜면 현재위치에서 엄마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알려주니까 이것을 보면서 다니세요. 집에 돌아올 때는 '우리집 찾아가기'에 
집 주소 입력해 뒀으니까 위치 켜고 우리집 찾아가기만 누르시면 되요."
뉴욕을 떠나서 혼자 런던에 올 때 쪽지가 집 키, 전화기 유심카드, 은행카드, 그리고 Citymapper'를 깔아줬다. 
그래도 필요할 때는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게 빨랐다. 
'엄마 타워브리지에 왔는데 피곤해서 돌아갈 때는 기차 타고 갈래. 어디서 무슨 라인 타야 해?' 
이렇게 말하면 시간에 상관없이 바로 답이 왔다. 

"Cinanmon Wharf 가 동네이름이에요? 길 이름이에요? 빌딩 이름이에요?" 
"빌딩이요."
Citymapper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있는 곳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그 빌딩이 있다. 
"테임즈강 지류를 건너면 다음 거리에 있네요. 걸어서 5분 정도니까 지도보면서 같이 가요. "
"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South. "
" 난 말레이시아. 한국 친구 한 명 있어요. 나도. 아주 나이스해요. 김치도 잘해요."
" 아. 나도 말레이시아에 가 본 적 있어요. 쿠알라룸프. "
"아주 덥죠."
"네. 덥고 습기가 많았어요. "
"여기 살아요?"
" 아니요. 딸이 여기서 일해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딸 집에 있어요. 한국 살아요."
"그런데 그걸 (Citymapper) 쓰는 걸 보니 스마트 해요."
"다운로드만 받으면 그냥 써요."
"난 그런 것 못 써요."
지도를 확인하니 목표지점과 반대 방향으로 화살표가 움직이면서 다시 여전히 5분거리다. 
"내가 지도를 잘못 읽었어요. 반대방향으로 가야 하네요. 자스민 로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되요.
같이 갈께요."
"내가 길을 갑자기 막아서 미안해요?"
"아니요. 괜찮아요. 운동하는 중이어서 어디로 걷든 상관없어요."
"밤에 한 번 와 본 적 있는데 그땐 친구차를 타고 와서 기억이 안나요. 
여기 빌딩은 모두 Wharf 가 붙어 있어요." 
둘러 보니 정말 앞 단어만 다르고 다 Wharf 다. 
" 그 빌딩에서 일하나요?"
"노. 친구가 와서 요리를 좀 해달라고 했어요. 아. 저 세탁소 기억나요. "
30미터 쯤 가니 우리가 찾아야 하는 빌딩이 나왔다. 

내 또래의 말레이시아 여인과 빌딩 앞에서 가볍게 손을 잡았다 놓으며 인사를 했다. 
막연히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호주에 오래 살면서 이민자로 사는 사람들이 갖는 표정이나 몸짓을 이해해서 오는 동질감일까?

주소가 없이 빌딩 이름만 듣고 '타워브리지에서 내려서 바로 한 블럭만 들어오면 보여.' 이렇게 
친구에게 안내를 받았을 수도 있다. 

주소를 가지고 있으면, 핸드폰이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는 시간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주소도 없이  비슷한 이름이 반복되는 인적 뜸한 골목에서 잠깐 방황했을 말레이시아 
여인과 헤어지고 타워브리지를 향해 걸으며 그 당황스러움을 생각해 본다. 
브리지에는 어깨를 부딪칠 만큼 관광객이 흘러다니지만 몇 골목만 들어오면 
자동차도 사람도 뜸한 한적함이 흐른다. 

돌아오는 길은 늘 기차로 오거나 다른 길로 왔는데 오늘은 도돌이표로 가기로 한다. 
방향이 바뀌니 같은 길도 다르게 보인다. 
건물도 다른 각도로 보게 되니 보이는 것이 다르다. 
'저기에 저런 낙서가 있었네.  저 창가에 있는 화분을 왜 못 봤을까' 
내 인생도 다시 되감기를 해서 산다면 다르게 살게 될까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갈 때는 강바닥이 훤하게 드러나있던 테임즈 강에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썰물과 밀물의 차이가 4미터가 넘다 보니 강에 물이 가득할 때는 강가를 따라 걷는게 
부담스럽다. 출렁거리는 물이 순간순간 착시를 일으킨다. 
암스테르담에서 영국의 뉴카슬로 가는 페리를 타고 밤을 세워서 바다를 건넌 적이 있다. 
침실 창 너머로 시커먼 바닷물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근육처럼 거세게 밀려왔다 갈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었다. 
'바다가 살아 있는 것 같애.'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니 반갑다. 몇 번 걸음을 멈추고 강물의 키가 자라는 것을 바라본다.
'어디 갔다 온거야? 너희들 어제 왔던 애들 맞니?" 
강은 대답하지 않는다. 
물이 빠진 강바닥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던 물새들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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