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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엄마가 주부가 된 기분이야.
작성자 강금주 이메일 samushil@gmail.com
작성일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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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관대할 뿐만 아니라 착각의 한계도 없다. 
한 번도 빵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 
빵 만드는 것을 주의깊게 지켜본 경험도 없는 사람, 
요리라는 것에 흥미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상식적인 관심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도 한 번 만들어 볼래.'
하고 빵가루에 맥주를 섞고, 그 빵은 맥주빵이어서 물 대신 맥주로 반죽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븐을 뎁히고 
오븐에 온도와 시간을 맞춰 놓고 넣었더니 
보기에도 맛있는 빵이 나왔어요. 이렇게 끝나는 이야기는 없다. 

말한대로 오븐을 켰다. 
온도를 맞추고 10분 정도 예열을 했다. 
그 동안 가루에 맥주를 붓고, 이 빵을 만들려고 특별히 사 온 맥주다, 
반죽을 한다.
'반죽 하실 때 너무 오랫동안 젓지 마세요. 
가루가 조금 뭉쳐있어도 괜찮으니까 공기가 들어간 채로 두세요' 
안내받은 대로 해서 오븐에 넣었다. 
240-245정도의 오븐에서  구우면 된다고 했다. 

"엄마가 주부가 된 기분이야. 오븐을 예열시키고 오븐에 빵을 구우려고 하니까."
이때의 주부는 아주 요리 잘한 주부다. 
이 환상은 곧 깨어졌다. 

오븐에 넣고 나서 5분도 지나지 않아 허리를 구부리고 오븐을 들여다 본다. 
아직 변화가 없다. 
10분 정도 지나니 조금 부풀어 오른 것 같다.
알람을 25분에 맞춰뒀는데 15분도 되지 않아 빵 표면이 타는 것 같다. 
오븐을 열고 빵을 찔러 보니 속은 아직 덜 익었다. 
조바심을 내며 오븐을 들여다 보다 오븐을 껐다. 
적어도 까맣게 탄 빵을 만들 수는 없다. 
어제 냉동된 요크셔 푸딩도 안내대로 시간을 맞춰두고 왔더니 
새까만 재로 변해서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그렇게 태울 수는 없다. 
오븐을 끄고 꺼내 보니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굳어있다. 
'빵이 숨을 못 쉬겠다.'
내가 대신 한숨을 쉰다. 

"찌야. 빵 오븐에 몇 분 구워야 돼?"
뉴욕에서 자고 있는 쪽지는 새벽 3시다. 그래도 내 빵이 급하다. 
"50분 정도 두시면 되요. "
" 50분이나! 엄마는  15분 지나니까 타려고 하는데...'
"오븐에서 중간쯤에 넣으셨어요?"
"응. 여기 봐봐." 카메라를 오븐으로 방향을 바꿔 보여준다. 
"그 정도면 맞아요. "
"알았어. 더 자. 엄마가 나중에 알려줄께."

빵은 결국 18분 정도에 오븐에서 탈출했다. 
그래도 이미 갈색으로 변해버린 껍질은 보기에도 참 매력이 없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맞다. 
보기에 호감이 안 가니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뭐가 잘못됐을까? 어디서 어긋난 거지?. 왜 쪽지랑 할 때는 잘 만들어졌는데 내 손으로 하면 이 모양이지.'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남이 하는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맞기도 하고 말이 안 되기도 한다. 
남이 한다고 나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은 해도 나는 해서는 안되는 일도 있고 
남은 눈 감고 하는 일도 난 눈 뻔히 뜨고 해도 못하는 일도 세상엔 무지하게 많다. 

"엄마! 빵 어떻게 되었어요?" 
"묻지마. 말하고 싶지 않아. 절대 빵 안 만들거야. 이제는."
"왜? 처음인데. 나중엔 더 잘할 수 있을거에요."
"싫어. 안할거야. 기분이 아주 안 좋아."
"나중에 나랑 다시 한 번 해 보자. 그럼 잘할거에요. "
엄마가 스스로 빵을 만들어보겠다고 빵가루를  뉴욕에서 런던까지 챙겨가는 것을 보고 
"우리 엄마도 드디어 요리에 관심을 가졌네." 기뻐했다. 
 빵을 망치고 나니 생각보다 기분이 불쾌하다. 실망스럽다. 

내 평생에 처음으로 빵을 만들어 보고, 
요리를 배워볼까 생각도 했는데 '아무래도 요리는 나랑 안맞아'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평생 남이 해 준 음식을 먹고 살면서 '맛있다' '잘했다.' '음 괜찮아' 하는 정도의 말만으로 
요리를 접했으니 내 손으로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하고 오븐을 켜고 빵을 구었더니 
엉망인 빵이 나온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도 실패는 별로 달갑지가 않다. 맛이 쓰다. 

주부가 되었다는 착각은 끝났다. 
쓰레기통에 빵을 버리면서 '가루도 아깝고 맥주도 아깝고 전기도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 돈으로 사 먹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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