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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런던 어드벤처
작성자 강금주 이메일 samushil@gmail.com
작성일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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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에어비앤비'가 공유경제의 모델이 되면서 
생판 인연 없던 사람의 집에 가서 주인처럼 
며칠 살고 나오는 일이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가서. 
어지간하면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찾아서 머문 지도 몇 년이 되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 호주. 미국을 방문할 때는 에어비앤비가 더 편하다. 
일단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고, 호텔보다는 사용하는 공간이 더 넓고 집 같아서 좋았다. 

런던에 지금 머물고 있는 아파트는 에어비앤비는 아니다. 
쪽지와 한빛이가 렌트해서 살고 있는 곳이다. 
쪽지가 3개월 간 뉴욕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뉴욕으로 가고 
한빛이는 2개월 전에 서울로 불려와서 한국에 있다. 
뉴욕에서 쪽지랑 지내는데 '런던 아파트를 비워놓느니 
엄마가 가셔서 편하게 지내세요.  날씨도 좋고 동네도 좋고, 엄마 런던 좋아하시잖아요. 
아파트도 정말 좋아요' 하면서 뉴욕에서 런던 왕복 비행기표를 구해줬다. 

런던에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한 가지 조건은 맞춰달라고 했다. 
밤에 혼자 비행장에 내리기 싫으니 낮에 도착하는 비행기로 예약을 해달라고 했다. 
아침 10시 20분에 도착할 거에요. 게츠익에서 기차 한 번 타고 런던 브릿지 가면 거기서 
우버 타면 15분 만에 집에 도착해요. 
그러려니 했다. 쪽지한테 무슨 일을 맡기면 마지막까지 두 번 세 번 확인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하고 알아서 하려니 두는 편이다. 
한빛이한테 일을 맡기면 끝까지 확인을 하는 편이다. 
둘째라 그런 건지,  사무적인 일을 아무래도 쪽지한테 주로 시켜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날 
'내일 몇 시쯤에 공항에 나갈까?' 물었더니 
'아침 일찍 7시 쯤에는 출발해야 해요.' 
'그럼 어떻게 런던에 아침에 도착하지. 시차가 있다고 해도.'
'런던에 몇 시 도착이야?'
'오 마이 갓. 엄마 밤 10시 50분 도착이에요. 낮 10시 50분이 아니고. 쏘리. 내가 착각했나 봐요.' 
순간 일이 꼬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모락모락 일어난다. 
'엄마가 요구한 건 딱 하나였잖아. 낮에 도착하는 비행기로 해 달라고. 그거 하나 요구했는데 
어떻게 밤 10시 50분이야. 그럼 내려서 가방 찾고, 세관 통과하고 집에 가면 밤 1시가 넘을 거잖아. 
처음 가는 집인데.' 
'에이 엄마 그래도 런던 4번은 가 보셨잖아요.  괜히 그런다.' 
4번은 진짜 4번의 방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런던에 해마다 두 번씩은 왔다. 1달씩 머문 시간만 해도 몇 번이다. 
쪽지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4번이라고 한 것이다. 

소파에 쭈그리고 누워서 '엄마 그냥 집에 갈까보다. 서울 가고 싶어.' 심통을 부려도 
이 티켓은 환불도 안 된다. 
인생이 꼬이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이게 진짜 인생이 꼬이는 일인가 싶다'가 
하나님이 우리가 평소에 하는 모든 말을 다 듣고 계신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엄마 내가 그냥 실수한 거잖아요.'
'그렇지 실수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는 게 문제지. 난 혼자 밤에 낯선 도시에 내리기 싫단 말이야.'
'엄마 그럼 딸이랑 같이 갈까?' 이 말에 둘이 마주보고 '그래 좋아. 같이 가자'
하면서 웃기 시작했다. 
'엄마랑 같은 비행기도 좋고 엄마보다 일찍 도착해도 좋고...' 
'가는 비행기는 값이 괜찮은데 오는 게 너무 비싸다. 다 하면 1000불이 넘어요.'
'천불날 일이네. 그냥 엄마 혼자 갈거야. 공항에서 집까지 태워다 줄 차나 수배해 줘. 
밤 12시에 가방 끌고 기차 타고 다시 우버 타기는 싫어' 
픽업 서비스가 준비되었다. 
차에서 나는 방향제 냄새 때문에 오는 동안 식은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리긴 했지만 드라이버는 
상당히 점잖고 세련되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지, 가만 있고 싶은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런던 생활이 시작되었다. 
주인도 아니고 객도 아닌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 아침 새벽 3시쯤 샤워를 하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6시 20분에 잠이 들었더니 밤 12시가 조금 넘어 잠이 깼다. 
샤워기 물이 몇 방울 떨어지더니 멈춘다. 
3개의 스위치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다른 샤워장으로 갔다. 
역시 물이 나오지 않는다. 
1층에 내려와 싱크대 물을 틀어보니 약한 수압으로 물이 나온다. 
'한빛아. 엄마가 샤워기 스위치를 뭐를 잘못 한건지 봐봐.;
페이스톡으로 샤워장을 비추면서 3개의 스위치를 돌려본다. 
'물이 안 나와. 뭐가 잘못 된거야?'
'엄마 런던 도착해서 샤워 한 번도 안 하셨어요?'
'무슨. 어제도 하고 계속 했지. 갑자기 물이 안 나와'

쪽지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1월 카운슬 택스를 아직 안 내긴 했는데 그런다고 갑자기 물을 끊지는 않을텐데 
누가 공사하느라고 스위치를 잠궜나 봐요. 혹시 그라운드 플로워에 있는 노티스 보드에 공사한다는 
안내 붙어있나 확인해 보실래요.'
'지금 새벽 3시에. '
결국 내려갔다. 없다. 
'그럼 뭐가 잘못 된거지. 내가 지금 카운슬 텍스 낼께요.'
한빛이를 깨워서 카운슬 택스를 내게 한다. 
이 집은 세입자가 한 달에 3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이 집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그건 렌트비에 포함이 안 된 것이다. 
'엄마 텍스 냈으니까 내가 테임즈워터에 전화해 볼께요' 
뉴욕에서 자다 일어난 쪽지가 영국의 수도관리국에 전화를 한다. 
하염없이 기다리라는 안내만 나온다. 
46분을 홀딩하고 기다리다 마침내 통화가 되었다. 
'이 동네로 들어오는 메인 파이프가 어디선가 터져서 그것을 고치느라 물 공급을 중단했다는  안내를 받았다. 
뉴욕에서 런던으로 전화해서 46분 기다려 얻은 정보다. 
'엄마, 테임즈워터랑 통화 됐어요. 가까운데 있는 테스코에서 먹는 물 먼저 사 오세요. 
하루가 갈 수도 있지만 최소한 몇 시간은 갈거래요. 사람들이 물 사러 나오면 멀리 있는 테스코까지 가야 하니까 
지금 가서 먼저 마실 물을 사오세요 , 6시 부터 열었어요.' 
'난 움직이기 싫은데. 지금. '
'그래도 물을 사다 놔야지 엄마가 안심하고 마실 수 있지.'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같은 층의 다른  두 집 문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중국인 젊은 부부와 영국인 노부부다. 
'물이 문제 있어요?' 하고 묻는다. 
'네. 물이 문제 있어요. 저 동네에서 메인 파이프가 터졌대요. 수리하는데 몇 시간 걸린대요. 하루가 걸릴 수도 있구요. 
테임즈 워터랑 통화했어요. ' 
두 부부 모두 안심하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엘리베이터 2층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남자가 탔다. 
역시 물이 문제가 있느냐고 묻는다. 같은 대답을 해줬더니 고맙다며 갔다. 
새벽 3시간 정도를 런던에서 안 나오는 수도물 때문에 뉴욕과 대구 런던에서 3 사람이 시간을 보냈다. 

테스코에는 나 말고도 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이 몇 명이 있다. 
2리터 물 다섯 병을 사 들고 왔다. 
최소한 며칠은 버틸거야. 
다행히 10시 반쯤 테임즈 워터에서 문자가 왔다. 곧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문자다. 
그리고 물이 돌아왔다. 

오후 4시쯤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지만 오늘은 만 보 정도만 가볍게 걷기로 하고 나왔다. 
어차피 운동인데 4층부터 계단으로 걷자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동네를 돌아서 쇼핑센타에 들러 감자도 사고, 야채도 사고, 요구르트도 사서 두 손이 감당할만큼만 
쇼핑을 해 가지고 돌아와서 7킬로는 충분히 넘는데 엘리베이터 타야지.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퇴근해 오던 남자가 이어폰을 빼라는 손짓을 한다. 이어폰을 뺐더니 '엘리베이터 고장났다고 문자 왔다. 
고장났으니까 걸어가야 해.' 하면서 앞장 서서 계단으로 간다. 
'오. 난 몰랐네.  자칫 갇힐 뻔 했네. 땡큐' 하고 4층 실제로는 5층을 걸어 올라왔다. 
아이들에게 문자를 했다. '엘리베이터 고장났대. 엄마 모르고 기다렸는데 갇힐 뻔 했어. '
'맞다. 주인한테서 엘리베이터 고장났다고 메일 왔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물 때문에 황당하게 하더니 
오후는 고장난 엘리베이터로 막을 내렸다. 
그래도 하나님은 제때에 사람을 보내서 나를 구하셨다. 

혼자서 사는 런던 어드벤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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