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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난 그 죽음에 공범자였다.
작성자 강금주 이메일 samushil@gmail.com
작성일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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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할머니가 새벽에 진짜 화려하고 예쁜 옷을 입고 오셨어. 
그런데 얼굴에 주름살도 없고 배도 안 나오고 
할머닌 맞는데 얼굴이 너무 젊고 예뻐.
그런데 우리 할머닌 맞아. 
내가 '할머니 어떻게 오신거야?' 물었더니 
'난 잘 있다. 아주 편안하게 잘 지내.'
'할머니 지난 번에 내가 화내고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괜찮다. 난 아주 편안하게 잘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엄마한테도 내가 잘 있다고  말해라. 
여긴 아주 좋아. '
'그런데 할머니 하나님한테 잠깐 갔다 온다고 말하고 오신거야?'
'너한테 내가 아주 잘 있다고 말해줄라고 엄마가 걱정할까 봐서. 엄마한테 꼭 말해라.' 

쪽지가 아침에 전화를 해 왔다. 
'엄마 너무 생생하게 할머니 꿈을 꿨어요. 할머니가 살아계신 줄 알았어.
엄마한테 할머니 잘 계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꼭 말해달래요.'
'엄마가 잠 안 자고 밤 세우고 있어서 엄마한테는 못 오셨나....'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백 일이 갓 넘었다. 
처음엔 예고없고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서 '어이없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장례절차를 치루면서도 엄마의 죽음이 아닌 뭔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피할 수 없는 그런 마음으로 엄마를 묻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대구에서 20층 높이에서 산을 보면  갑자기 저 산 속 어딘가에 묻혀있을 엄마가 생각났다. 
모든 산등성이가 엄마의 무덤의 일부로 다가왔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니 엄마는 산등성이에 묻혀 있는 엄마가 아니라 생활 속의 일부로 다가왔다 
라떼를 데리고 걷다가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하고 생각이 돌아갔다. 
1초 뒤에 '아 ! 안 계시지!' 
뭔가 쇼핑을 할 때면 ' 찌야 이거 할머니도 하나 사다 드릴까?' 했다가 
'아! 참 ! 안 계시지' 
추석을 보내면서 '혼자서 뭐 하시나 한 번 가 봐야지' 하다가 정신이 돌아왔다. 
'할머니 또 전화 안 온다고 생각하시겠다 전화 좀 해봐' 하다가 
'엄마 안 계시지.' 하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에 내가 느낀 감정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카키색일까?

쪽지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죽어서도 꿈에라도 찾아와 자식을 안심시켜주고 가는 데까지 부모는 맘을 쓰는가!

엄마와 나의 마지막 대화는 다음날 이사를 앞두고 보름 전부터 풀어헤쳐 놓은 이삿짐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엄마가 계시다 내려가신 오피스텔의 관리비 문제였다. 
평소 경우가 밝고 숫자 기억에도 남 못지 않은 기억을 자랑하시는 엄마가 
상식적인 내 설명을 도통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셨다. 
자동이체를 시켜놓고 왔는데 왜 관리비가 3개월이나 밀렸냐고 화를 내셨다. 
엄마는 그 오피스텔에 딱 3개월 계셨으니 실제로 첫 달 쓴 며칠치만 계산이 되고 
나머진 모두 연체료가 붙은 채로 남아있었다. 

계산은 이미 내가 끝냈지만 확인을 해보라고 하니 
화를 내신 것이다. 그럴리 없다는 것이다.
왜 연체가 되었는지 자동이체는 잔액에서 10원만 모자라도 이체가 안 되니 
첫 달 관리비에서 210원이 모자라 자동이체가 안 되고 그 후로 두 달은 자동으로 연체되어 있었던 상황이다. 

당신 통장에 돈이 있는데 왜 관리비가 안 나가고 그게 연체가 되느냐고 
말이 안 된다고 화를 내셨다. 
서서히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다 했는데 왜 못 알아듣는 척 하는 지. 
난 그때 엄마가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바쁘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평생 하지 않으시던 '똑똑하고 잘난 딸 둬서 내가.... ' 
마음이 상했다. 
다음날 이사를 하고 일주일을 짐을 정리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문득문득 엄마한테 전화해서 마음을 풀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치고 힘들어서 '이따가. 내일 ' 하면서 일주일이 갔다. 
짐은 다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서울에 볼 일이 있어 한빛이가 운전을 하는 차에 타서 
허리가 아파 뒤에 누웠다. 

비가 으슬으슬 내리고 있었다.
'엄마 뒤에 누워있어도 운전 조심해. 엄마가 피곤하고 누워있으면 속도를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 알지. '
운전하는 한빛이에게 다짐을 놓고 한 시간 정도 누워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누군지 모르겠는데 엄마 전화' 
전화기를 열어보니 
30분 전에 엄마가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으니 내려 올려면 혼자 조용히 오라는 동생의 카톡이 와 있다. 
그리고 몇 분 전에 엄마가 사망했다는 카톡이 하나 더 와 있다. 

'고흥 할머니 돌아가셨대.'
'뭐?' 
'할머니 돌아가셨대. 방금. 차 돌려.' 
어디쯤에서 돌아왔는지 난 모른다.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올케에게 전화를 했다. 
'예. 고모 ' 
'엄마가 돌아가셨대요.' 

그렇게 우리 4 형제는 모여서 4일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했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같았다. 
우리는 모두 엄마의 죽음에 일조한 공범자들이었다. 
우리 넷 중 한 명도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느끼는 죄책감의 무게와 
후회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 

그러나 그 죄책감과 후회마저 생활이 서서히 녹여갈 것이다. 
잊혀질 것이다. 
죽은 부모는 자식에게서 그렇게 잊혀져 간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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