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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차 IVY탐방 후기
작성자 십대들의쪽지 이메일 samushil@gmail.com
작성일 201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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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못할 리가 없다

하버드, 예일대학교, 필립스 아카데미, 초트 고등학교 등을 방문하고 나니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14년 동안 살면서 내가 도대체 뭘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다른 학생들이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나는 놀고 먹고 자고 온갖 편한 일들만 골라서 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니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강의를 들으며 전의에 불타올랐다. 이들도 사람이고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딱히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닌데 이 사람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리가 없다. 먼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런 생각의 전환이었다.
또 한 가지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정신, 끈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유별나게 그런 것들을 못참았다. 최대한 피해가려고 잔머리만 굴렸다고 할까? 하지만 이제 고통없이 이루어질 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세상을 너무 편히 살려고만 했다. 고통스럽게 최대한 몸부림쳐야 꿈이 이뤄질 것이 아닌가?
한국에 있을 때는 평범한 고등학교나 대충 다니며 어떻게 해보자는 안이한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SSAT 와 토플시험을 보고 미국의 초트 고등학교를 목표로 올 한 해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노력할 것이다. (박소현 중 2 여)


나도 할 수 있구나!

기차여행을 하면서 인내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IVY 대학들을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IVY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는데 그 중 가장 큰 특징은 노력하고 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그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니 나도 IVY 학생이 될 수 있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 대한 진정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큰 꿈을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 보다 몇 십배 큰 미국을 돌아보며 ‘세상은 넓구나’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나의 급한 성격을 바꾸는데 도움이 많이 된 것같다. (오영준, 남 중 )


가장 뜻깊은 2주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 한국에 돌아갈까 했는데 이젠 좀더 있다 가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2주 동안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가장 뜻깊은 2주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는 영어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꼈다. 좀더 영어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얻은 것이다. 또한 정말로 많은 곳을 가 보고 특별한 경험도 하였다. 특히 기차로 횡단할 때는 정말 뭣하러 이렇게 힘들게 여행하나 그냥 비행기 타면 끝날 것을 하고 생각했지만 기차 안에서 어떤 노부부가 죽기 전에 기차로 횡단한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이렇게 기차를 탄 우리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감동 받은 것이 있다면 바로 김형모 선생님의 강의다. 정말 인생에 필요했던 것도 있었고 또 다시 생각을 하게 했던 내용도 있었다. 나에게 자신감을 키워줬을 뿐만 아니라 용기를 가지게 하셨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여행을 마련해 주신 것도 그렇고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신 것도 감사하다. 이번 여행으로 나는 새로워졌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보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 김 미연 중2 여 )


만약 내가 안왔더라면

건물들과 밤 경관이 특별나게 아름다웠던 시카고에서는 미시간호수에서 바라보았던 시카고의 건물들을 잊을 수가 없다. 캠퍼스가 아름다웠던 시카고 대학,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 주었던 미국 대학생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뉴욕에서는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줄리어드 음대에 가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른 대학과는 달리 줄리어드는 건물 내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겉모습만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 했지만 입학해서 오면 된다는 마음으로 위안 받았다. 줄리어드 문을 통과하는 몇몇의 학생들이 너무 부러웠고 또 행복해 보였다. 그 어느 대학교에서 받은 충격보다 더욱 컸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은 그리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IVY에서 이미 공부하고 있는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해 왔으며 앞으로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희미하게나마 길이 잡힌 기분이었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은 MIT main concert 홀에서 노래를 했던 경험이다. 지금은 비록 내가 MIT에서 노래를 하지만 언젠가는 카네기 홀, 그리고 링컨 센터에서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강한 생각을 했다. 여기를 만약 내가 안왔었더라면 어찌했을까? 여기 오니까 내가 얼마나 우물안의 개구리였고 엄청나게 시간 낭비하며 자만하며 살았는지 깨달았다.
넓은 미국이라는 땅에서 나는 마냥 동경만 하던 IVY 리그를 방문하여 큰 도전을 받았고 이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배우며 선진 문화의 예절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이 나라의 장점과 분위기는 나에게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주었고 나는 꼭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원경 고 1 여 )


많은 도전이 된 여행

나에게는 매우 많은 도전이 되었던 여행인 것 같다. 처음으로 오게된 해외연수여서 그런지 몰라도 매우 의미 깊은 여행이다. 한국에서 그래도 열심히 해서 나오는 웬만큼의 성적을 보고 혼자 자만했을 때가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이 먼 이국 땅에서도 우리 한국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많은 도전이 되었다.
미국에 처음 내렸을 때 느꼈던 신선함과 신기함, 뜨거운 태양, 처음보는 신기한 건물들, 사람들 정말 모든 것이 신기했다. 미국사람들도 하기 힘들다는 기차대륙횡단, 평균 건물 높이가 55층이나 되고 건축물의 교과서로 불리는 시카고,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보스턴, 세계에서 가장 번잡하고 유명한 도시 뉴욕 등이 모두 현실로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예일 대학에서 우리를 맞아준 지혜누나가 구체적인 입학정보를 알려주면서 수능과 SAT 등에 대해서 준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제 나에게도 유학의 꿈이 심어졌다. 기도하면서 준비하자. 실행하자. 지금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다. 2년 후에 활짝 웃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 강준희 고 1 남 )


꿀과 같은 시간

과학의 전 모델인 연금술은 동가교환의 원리라 믿고 있었다. 이 세상은 자연도 자신이 원하는 물질을 만들기 위해 그만한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가치를 심어야 한다. 나의 한계점은 무한하므로 나는 가능하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운동을 하자. 몸과 마음을 모두 단련하는 미국 학생들의 생활이 인상적이었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는고 한다. 그러므로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나의 몸의 건강에 투자하겠다. 이번 여행에서 최고령자로서 통솔력과 리더쉽은 많이 부족했지만 나에게는 꿀과 같은 시간이었고 중요한 기회였다. 아무리 작은 언덕이라도 시야를 가리면 먼 산을 볼 수 없듯이 나에게는 한국을 나와 바라본 미국이라는 곳은 나를 가로막고 있던 언덕의 높이를 깎아 주었고 현실과 꿈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좋은 기회였다. (정재성 고 2 남 )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 간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대충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중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느끼고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선교사와 한의사가 되고 싶은 꿈이 있는데 지금처럼 생활해서는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집에 있었다면 아무 생각없이 보냈을 시간인데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돌아가게 되었다. 좋은 오빠 언니와 동생들을 만나서 좋은 인연으로 남을 수 있고 또 쪽지를 통해서만 만나던 김형모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오늘 보았던 오페라 유령과 안개에 휩싸여 있던 뉴욕의 야경은 가장 많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박한나 중 3 여 )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여행

나의 꿈은 IVY 리그 중에서 MIT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쪽지에서 미국의 IVY 리그를 간다는 것에 놀라 신청하게 되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며 내 꿈을 더 확실히 다져서 오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3일 동안 계속 암트랙 기차를 타고 횡단한 일이다. 선생님께선 힘들거라고 하셨지만 기차는 매우 고급스러웠다. 많이 눕힐 수 있어서 잠을 자기에도 편안하였고 전망칸, 식당칸 매점 등 우리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기차에서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전망칸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머리를 감기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금세 기차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두 번째는 나의 꿈인 MIT에 간 일이다. 특히 Ouestions and Answers 시간에 이 정은 누나가 쉽게 설명해 주며 내가 필요한 정보를 주어서 너무나 좋았다.
미국에 있는 동안 우리는 많은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가서 그 학교에 대한 투어와 질문을 하면서 알아낸 것도 많고 나의 생각을 새로이 바꾸기도 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생활하면서 ‘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그쳐 있었기 때문에 발전이 없었던 것 같다. 김형모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서 ‘우리의 한계는 우리의 생각에 따라 다르다. ’ ‘ 확고한 신념을 가져라’ ‘ 순간순간을 노력하라’는 등의 마음에 와닿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중2, 이수현)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4시간을 달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먼저 Universal Studio라고 써있는 지구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표를 끊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 날은 조별로 활동한다고 한다. 서은 언니, 한나 언니, 규연이, 나 이렇게 네 명이서 먼저 스튜디오 투어를 하였다. 영화 촬영장도 살펴보고, 영화 속 상황이 되기도 하면서 한번 돌아본 후에 우리는 ‘슈렉’으로 갔다. 가상 체험하는 곳이었다. 특히 그 안에서 기침을 할 때 앞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 정말 실제로 보는 듯 했다. 슈렉을 보고 나서 주위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만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만화 캐릭터 복장을 하고 돌아다녔고, 사람들은 모두 여름 차림이라서 정말 먼 곳에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곳은 샌프란시스코보다도 더 더워서 정말 한여름 옷차림을 한 사람이 많았다. 구경을 하다가 또 다른 여러 가지를 타러 갔다. 먼저 터미네이터로 갔다. 터미네이터는 쭉,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해 몇 번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아주 사람이 많이 몰려있었다, 특히 나 한국사람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어찌나 한국 사람이 많은지 여기 저기서 낯익은 말들이 들려와 마치 한국에 온 듯했다. 또 한국 사람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또는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반면에 우리 조원을 비롯한 한국 사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았지만. 하여튼 터미네이터는 굉장히 멋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보여지는 것처럼. 준비할 때 굉장히 어려울 거 같은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저절로 빠져 나왔다. 단지 실제로 액션을 보여주는 사람이 실제 주인공과 너무 닮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터미네이터를 보고 나오면서 어떤 남자와 부딪혔다. 분명히 내가 다른 곳을 보다가 충돌 사고가 일어난 것인데 그 사람이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뭐 나도 하긴 했지만 더 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부턴 무슨 일 있으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는 가상 체험 하는 것이 많았다, 장히 실감나게. 우주에 무슨 임무를 받고 찾아가는 것, 슈렉, 터미네이터 등 많은 것들이 그런 체험이었다. 그 외에도 우리 나라의 후룸라이드 같은 것인데 배가 훨씬 커다란 쥬라기 공원이나 약간 청룡열차처럼 앞으로 갔다가 후진해서 다시 돌아오는 머미, 이것은 정말 시원해서 몇 번이고 탔다.

무엇을 살까 하고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아직 적응이 안돼서일까?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려고 하면 5달러. 우리 나라에서의 가격이 떠올라 냉큼 사먹기가 약간은 두려웠다. 계속 그곳을 돌아보면서 항상 생각하는데, 이곳은 정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그것에 탑승할 엄두도 못 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항상 그곳 직원들이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주고 또 그런 시설도 잘 되어 있어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또 그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고 또 다른 사람들 (그곳의 관광객들)도 정말 항상 양보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 이곳이 우리 나라의 놀이공원들과 달랐던 점은 스릴 있는 놀이기구 보다는 그냥 즐길 수 있는 테마가 있게 하나 하나의 놀이기구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놀이기구 외에도 기다리는 곳, 또 타고 가는 동안 양 옆의 배경도 아주 멋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땡볕에서 짜증내며 있는 우리 나라와는 많이 차이가 났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와서 살펴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은 여행을 다니며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오전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강금주 선생님이 내주신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오후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놀다 보니 벌써 여행의 하루를 보냈다. 즐겁고 느낀 점도 많은 하루였던 것 같다.


  • 미국을 횡단하여 나의 꿈을 찾아 IVY 를 간다.
2월 3일 - 첫째 날 : 호주 연수가 끝나고 시드니에서 서울로 온 지 사흘이 된 날이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 공항으로 나가야 한다. 이번엔 미국 횡단이 처음이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며 계속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건강하게 긴장을 늦추지 않기로 다짐한다. 한 번 다녀온 길이지만 그래도 내 가족과 여행을 할 때와 스물 여섯명의 아이들과 다닐 때는 책임감이나 움직이는 면에서 사뭇 다르다. 공항에는 부모님과 아이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한다. 밤기차로 버스로 그리고 비행기로 모두들 제 시간에 모였다.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는 없는 것 같다. 다행히 호주 연수에 참여한 아이들이 5명이나 있어서 단체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국에서 어떤 태도로 남을 배려하고 여행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특히 올해 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조기입학한 재성이, 여학생 중의 왕언니인 다솜이가 호주 연수 중 조장의 경험이 있어 한결 마음이 가볍다. 두 사람이 좋은 모범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샌프란시스코 행 노스트웨스트에 몸을 실었다. 동경에서 잠깐 멈추는 사이 정원이와 다솜이는 연수 동창생이라며 공항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며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다. 난 서서히 공항과 비행기 기내식 냄새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상이가 결국 비행기 멀미를 했다. 한나는 끝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며 비행기에서 화장실 쪽으로 오간다. 도착하자 마자 샌프란시스코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에 들떠 있는 아이들을 재우고,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의 게임을 중단시키고 잠을 재웠다. 한 숨 자둬야 한다. 그러나 역시 비행기에서 잠을 자는 것은 무리다. 4 편의 영화를 다 보고 다큐멘터리까지 다 봐도 잠은 오지 않는다.
착륙 40분 전에 조종사의 멘트가 나오면 그 말이 나에겐 자장가다. 거짓말처럼 그때부터 잠이 쏟아져서 착륙을 위해 의자를 바로 해야 하는 20분 전은 정말 힘든 시간이다. 미국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샌프란시스코에 내리면 머리에 꽃을 꽂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샌프란시스코와 스탠퍼드 그리고 Golden Gate Bridge
다시 2월 3일 아침이 반복되고 있다. 만약 세월이 이렇게 같은 날만 다른 장소에서 반복된다면 아무도 세월을 아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것이 시간이 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은 날짜에 지겨워 할 것이고 하루라도 자신이 살 날을 줄 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많은 돈을 지불 할 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생명을 하루라도 연장 시키기 위해서 기꺼이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하듯이.
어쨌든 덤으로 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돌아갈 때 비록 내 인생에서 하루가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오늘 다시 받은 2월 3일은 행복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아침 7시 30분에 도착하였다. 미국 여행이 처음인 아이들은 미국이 영화 속에서처럼 아주 복잡하고 큰 도시만 있는 줄 알았는데 김포공항에도 못 미치는 작고 한산한 공항의 모습에 사뭇 실망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미국 땅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은 모습이다. 멀미로 배를 쫄쫄 굶은 인상이를 포함해 아이들 모두 한국음식이 절실이 그리운 표정이다. 여행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린 흔히 여행하면 낯선 도시, 이국적인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하지만 여행지에서 처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이나 신선함보다는 두고 온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인 경우가 더 많다.
미국에 왔으니 ‘햄버거를 원없이 먹어보고 싶다’는 아이들 보다는 ‘김치에 된장국에 밥 먹고 싶어요’ 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역시 여행은 평소에 우리가 가치를 두지 않았던 익숙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익숙한 것이 좋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와 기다리고 계시는 김 목사님과 동행을 하였다. 서울에서 뵙던 분을 다시 미국에서 뵙는 기쁨과 함께 아이들의 숫자를 세는 일이 시작되고 있다. 이 여행을 마칠 때까지 아마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린 아이들의 숫자를 세며 다 있는 지를 확인할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일의 중요성.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 아침으로 이미 뱃속은 적당히 느끼하지만 그렇다고 도착하자마자 한국식당을 찾아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만 우린 지금 금강산 정도에 온 것이 아니다.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보고 느끼자. 금문교야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벤츠에서 만든 흰색 리무진 버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뒤에 화장실까지 있다는 드라이버의 설명에 아이들은 ‘와’ 하며 황홀해 한다. 샌프란시코 하면 생각나는 언덕길을 유감없이 오르내리라. 먼저 piers 39로 향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의 겨울 옷차림이 서부의 미풍에 적당히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미국의 어느 도시보다 아름다운 날씨와 태평양을 품에 안고 있는 풍요로운 곳인데 가끔씩 일어나는 지진으로 안전을 최고로 생각하는 이들이 정착지로서는 약간 꺼리게 하는 곳이 이 도시다.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마셔보자. 어쨌든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 Golden Gate Bridge
다리의 색깔은 금빛과는 정말로 먼 붉은 빛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데 왜 사람들은 이 다리를 골든 브릿지라고 부르는걸까? 서부 황금개척 시대에 노동자로 미국에 첫 발을 내디딘 중국인들이 몇 달의 먼 뱃길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위풍도 당당하게 먼 뱃길을 맞아주던 이 다리의 모습이 당시의 중국 사람들에게는 정말 황금으로 빛나는 다리로 보였을 것이다. 황금으로 만든 빛나는 성문을 통해 입성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 밝은 붉은 빛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다리를 굳이 황금빛이 나는 다리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신천지를 찾아오는 자신들의 삶의 ‘황금기’를 꿈꾸며.
우리 역시 우리 인생의 golden age 인 십대를 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버스에서 우리가 머리 아프게 고민하며 써야 했던 세 편의 글 중의 하나가 이래서 탄생했다.
“내 인생의 황금기인 십대를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낼 것인가? “ Golden Gate Bridge 와 우리 인생을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어주는 인생의 황금가교인 십대 ‘ Golden Age Bridge’ 아! 머리 아프게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 관광의 기쁨은 잠시 생각하고 써야 하는 고통은 영원한 것 같다.
  • 우리 모두 어느 소왕국의 Royal Family 가 되어 보자.
2편까지 모두 섭렵한 ‘프린세스 다이어리’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저 위험해 보이는 언덕길을 쌩쌩거리며 달려야 할 것 같은 이 참을 수 없는 충동은. 머리에서는 끊임없이 ‘ I’m supergirl.’ 하며 멜로디와 함께 그 가벼운 바람결이 스쳐가지만 난 여기 수퍼 걸로 온 것이 아니라 수퍼 바이저로 왔다. 강금주 참자. 조금만 참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지 혼자의 여흥에 겨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에게 숨겨져 있는 이 ‘끼’ 그 ‘끼’를 난 사랑한다. 어쨌든 스케이트 보드는 못 타도 우리 모두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가는 트램에 올라타서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내기로 했다. 아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트램에 오르면 언덕을 내려가면서 태평양을 가슴에 품고 잠수할 것 같은 인어공주의 환상도 가질 수 있는데. 버스 드라이버의 엄명에 우리 모두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트램에 오르기로 했다. 아무도 바쁘지 않고 아무도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우리도 더불어 한 템포 늦은 박자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이의 장난감처럼 딸랑거리는 트램 소리에 길을 비켜주는 거리의 사람들 . 우리가 저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것일까? 저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거울 속의 내가 정말 나 인지?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정말 나인지 헛갈리는 마음이다. 우린 모두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지만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서로를 즐겁게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부지런히 오른쪽과 왼쪽을 오가며 사진을 찍고 계시는 쪽지 발행인.
아 갑자기 커피 생각이 난다. 아까 마셨나? 모두들 점심 때 오랫만에 대한 한국식 순두부에 감격했었는데. 아마도 미국에 와서 순두부 정식을 보며 감격할 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렇듯 모르고 있었던 것, 흔하고 작은 것들이 큰 기쁨을 주는 반짝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는 멋이 있다. 그래서 여행을 그렇게 모두 사모하는 지 모른다.
  • 앨커트래즈 섬을 벗어나 보는 용기 도전 그리고 영화!

어쨌든 나의 문화지식의 많은 재고는 미국영화로부터 온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무엇을 보든 ‘ 어 저거 어느 영화에서 보았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오니 말이다. 점심을 먹고 바다에서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기로 했다. 바닷가에는 물개들이 몰려나와 따스한 햇살에 옷을 말리며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물론 내 귀에는 모두 같은 소리로 울어대는 것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 없이 ‘왜 저렇게 시끄럽게 우는거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름지기 관광객이라면 처음 부딪치는 모든 일에 신선한 의미를 두어야 하고 일상의 이끼가 묻은 시선 대신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름답게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물개들의 울부짖음은 서로의 대화라고 해 두자.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하버 크루주를 시작했다. 배에 오를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은 이렇게 저 넓은 바다로 정처없이 항해하고 싶다는 철없는 마음이다. 정처라는 곳이 곧 정해진 장소요 정처없다는 정해진 곳 없이 항해하니 그것이 결국은 바다만 뱅뱅돌다 죽도록 고생하고 돌아오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린 왜 ‘정처없이’ 떠나고 싶은 집없는 아이의 근성을 모두 조금씩 가지고 있는 걸까? 돌아가야 할 곳, 돌아와야 할 곳이 없이 어디론가 떠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지 모두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철없는 생각은 아랑곳 없이 배는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멘트를 하며 정해진 시간만큼 머물다 돌아서야 할 곳에서 냉정하게 돌아서고 있다. 찬 바람을 피해서 일층의 유리창 안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배가 금문교 아래를 지날 때는 모두 밖에 나와 금문교의 웅장함에 감탄하고 있다. 저 쇠로 된 밧줄 하나에 25,870개였나 (?) 그 많은 쇠심줄이 촘촘히 박혀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굳세고 튼튼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다리를 설계한 사람이 조셉스트라우스라고 말했던가? 아무리 바다가 깊고 길이 멀어도 한 사람이 꿈을 가지고 꿈꾸기 시작하면 거기에 다리가 놓이고 건물이 올라간다. 바닷물살이 세고 깊어서 교각을 박을 수 없다고 보통사람들은 이곳은 다리를 놓기에 불가능한 곳이라고 돌아섰지만 꿈을 가진 한 사람이 교각없는 다리를 생각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리가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다리 없는 다리가 되는 역사를 만든 것이다. 불가능한 그 시점에서 바로 인간의 꿈이 시작된다.
꿈꾸는 사람, 그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 불가능한 요소를 생각의 출발점으로 하여 자신의 꿈을 만들어 간 사람들이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 포인트가 바로 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모두 어떻게 현실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트램도 탔고 샌프란시스코의 골든브릿지도 보았고 배로 한 시간 동안 유람도 했으니 이제 서서히 갈길을 재촉해야 한다. 멀리 스탠퍼드 대학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스탠퍼드 출신의 선배님이 한 분 계신다. 가는 길에 실리콘 밸리에 잠깐 들러 보기로 한다.
스탠퍼드 대학은 샌프란시스코에 몇 번 왔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들러보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우선 동부의 아이비리그에 비해서 서부에 있다는 점과 상대적으로 역사가 길지 않다는 편견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딸인 첼시가 이곳으로 왔을 때 대통령 부부가 기숙사에 들어가는 첼시를 위해서 함께 이 대학의 기숙사에 온 것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동부의 그 많은 대학을 두고 이곳까지 온 이유는 부모를 떠나있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정말 여기가 좋아서였을까? 그도저도 아니면 동부의 대학에서는 입학허가를 못 받았나? 나의 쓸데없는 공상은 스탠퍼드의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사라졌다. 이건 대학이 아니라 어느 리조트 시설에 골프치러 오는 기분이다. 물론 리조트 시설에서 골프를 즐겨본 역사는 내 인생에 아직 없지만 영화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 다르다. 이것이 나의 느낌이다. 대학 하면 연상되었던 그 모든 것- 붉은 벽돌 혹은 시장만큼 번잡한 주변상가 혹은 공부 외에는 세상이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나 공부 ’ 하며 인상쓰고 다니는 학생도 없고 한가하고 또 한가하다. 야자수 나무는 왜 저리 한가하게 늘어서 있는고. 참 다르다. 많이 다르다.
이 대학을 졸업하신 분으로부터 유창한 한국말로 설명을 들었다. 이 대학이 세워지게 된 동기 - 열다섯 살의 재기발랄한 아들을 병으로 잃은 스탠퍼드의 개인적인 비극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캘리포니아의 모든 젊은이들은 내 아들이다’ 는 범가족적인 사랑으로 승화되어 전 재산을 털어 이 대학을 세우게 되었다는 첫 역사의 시작부터 최근의 실리콘 벨리사까지 모두 줄줄이 우린 미국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배우고 있다. 우리가 모여 앉은 잔디 밭 주변으로는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여유 있게 때론 바쁘게 캠퍼스를 오가며 자신들의 역사 한 페이지를 적고 있다.
실리콘 벨리로 인하여 학교 주변의 땅 값이 몇 백배의 인상을 거듭했지만 학교와 관련된 땅 8000 에이커는 어느 경우에도 팔 수 없다는 것을 법으로 묶어 두었으니 그 선견지명 또한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교육만이 최고의 투자다. 교육만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의미있게 바꾸고 교육만이 한 사람의 뜻을 시간을 거슬러 전할 수 있다.
스탠퍼드의 이곳 저곳을 거닐다 보면 여덟명의 동상을 만나게 된다. 보통의 동상이 그냥 멋없이 뻣뻣하게 서 있는 모습이라면 이 구리로 된 동상들은 모두 금방이라도 어디로 떠날 차비를 하며 발길을 뗄 것 같은 모습들이다. 그리고 차분히 바라보면 모두 맨발이다. 목에는 밧줄까지 걸고 있는 모습들이 참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그 밑에 쓰여진 작품설명을 읽다 보면 모든 의문이 일시에 풀리며 그 동상의 표정 하나하나를 다시 보게 된다. 우리에게 ‘생각하는 사람’ 으로 잘 알려진 조각가 ‘로뎅’의 작품인 이 동상들은 프랑스 카사라는 작은 도시가 에드워드 3세가 이끈 군대에 의해 완전히 점령 당하여 망하게 되었을 때 망해가는 자신들의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 모두 맨발로 목에는 밧줄을 걸고 영국의 왕에게 자신들의 도시를 파멸시키지 말라는 탄원을 하러 마을을 떠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그 마을의 보통 사람이었으며 이 보통사람들의 목숨을 내건 - 목에 밧줄을 건 모습이 목숨을 내 놓았다는 것을 상징한다- 맨발의 행진에 영국 왕이 그 도시를 완전한 파멸에서 제외시켰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이 뜻을 가졌을 때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주제 하나가 다시 탄생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영웅적인 일은 무엇일까? 혹은 내가 알고 있는 보통사람이 해낸 영웅적인 일” 샌프란시스코 기행문과 함께 적어야 할 3가지 글 중의 하나가 주어진 셈이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글을 쓸 것이다. ( 나의 희망사항 )
후버댐을 건설한 후버 연구소가 있는 후버타워는 4시 30분 문을 닫아서 볼 수 없었다. 대신 스탠퍼드 대학의 교회에서 우아하고 장엄한 모습에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교회 건물 하나도 이렇게 건물 자체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동부의 학생들이 그 고풍스런 대학들을 뒤로 하고 이곳 스탠퍼드까지 날아온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지는 스탠퍼드를 뒤로 하고 우린 라마다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 방문한 대학이지만 벌써 누군가는 ‘이 대학에 꼭 오겠다’는 다짐의 소리들이 들린다. 앞으로 우린 많은 대학을 방문해야 하는데 가는 데 마다 꼭 ‘이 대학에 오겠다’ 고 다짐한다면 그 또한 걱정이다. 어쨌든 많이 보고 느낄 일이다. 보너스로 받은 긴 하루가 서서히 접히고 있다.
서울가든에서 저녁을 먹으며 우린 호텔이 제공하는 아늑한 침대의 쿠션과 따뜻한 물에 몸을 씻는 샤워를 기대하며 미국의 첫날을 길게 길게 보냈다. 그만큼 보람도 많은 날이었다.

-인솔자 강금주


어느 어른의 꿈이 전세계 어린이들의 꿈으로 - 디즈니랜드 (중2, 원양재)

호텔에서 충분히 숙면을 취한 후, 어제의 기분을 이어 신나게 놀 준비를 했다. 어제 우울해 보였던 LA 풍경은 꿈과 희망으로 넘치는 풍경으로 바뀌고, 타는 놀이 기구 보다 볼 것을 찾으라는 선생님의 충고도 그냥 흘렸다. 역시 선생님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복장을 한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했는데 앨리스 복장을 한 여자 아이가 매우 귀여웠다. 처음 탄 놀이기구는 광산 열차였는데 무섭진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른 조와 함께 인디아나존스 어드벤처를 탔는데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이 아주 잘 표현했다. 나를 삼킬듯한 화염, 흔들거리는 차량이 매우 스릴 있고 재미있었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 (중2, 박소현)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 왔다. 시카고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인데 서울만큼이나 추웠다. 아침부터 두꺼운 잠바 아래 윗옷을 껴입고 장갑과 목도리를 챙겼다. 너무 싸매 입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굴러오는 거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먼저 시카고대학은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밖에서 볼 땐 담쟁이 같은 것이 벽을 타고 올라가 마치 유령의 집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학교 안은 따뜻하고 밝았다. 우리는 두 조로 나뉘어 그 학교의 두 학생이 한 조씩 맡아서 학교 안을 소개해주셨다.

우리를 안내해 주신 학생은 곱슬 머리에 눈이 주황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이 학교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6~7명 정도 되는 거 같았다. 우리처럼 30명을 몰아 수업하는 형식과는 많이 달랐는데 교수님들이 양복 윗도리를 벗고 교탁 위에 앉아 수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기 학생들은 전날 미리 공부를 해서 학교에서는 공부한 것을 토론한다고 한다. 나는 이 형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토론하며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만히 책상에 앉아 필기하며 설명 듣는 것보다 더 잘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학생 수도 적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도 들을 수 있고, 여러 모로 좋은 거 같다. 이런 대학에서 내 젊은 날을 보내며 지식을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Harvard, MIT, Andover 그리고 GDA (중1, 오영준)

머나 먼 기차여행을 다 끝내고 보스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우리는 드디어 MIT 대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말로만 들었던 명문 공대인 MIT를 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설레었다. 더군다나 진짜 한국 학생과 인터뷰도 있다고 들어서 정말 기대했었다. MIT에 도착한 순간부터 벌써 MIT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시설부터 서울대와는 비교가 안되었고 (당연하지만), 학교 분위기 자체가 남달랐다.

MIT에서는 직접 유학 와서 공부하는 형이 안내를 해주었고 지금 4학년(senior)인 누나와의 인터뷰도 가졌다. 내가 관심이 조금 있었던 과학이 많이 활성화 되어 있었고, research 같은 것이 특별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점이 아주 신기했고 그 누나의 경험담과 질문을 통하여 MIT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MIT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그렇게 기대하던 Harvard University에 갔다. 하버드는 내가 평소에 관심 있었던 곳이라 아주 주의 깊게 학생 형의 말을 듣고 구경했다. 하버드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고 직접 하버드 대학 교실에 들어가서 이야기도 했다. 미국 교육과 한국 교육과의 아주 큰 차이점은 토론(debate)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토론을 하면 지식이 쌓일까? 하고 의문점도 있었지만 미국에서의 교육을 자세하게 들어보니 그게 더 효과적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버드나 MIT 같은 대학은 공부를 아주 잘하는 천재들만 가는 곳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 다방면에서 뛰어나야 되고, 너무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오는 곳도 아니다라고 바뀌게 되었다.

나도 미래에 이런 대학에 오면 좋겠고 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유익한 시간을 보내서인지 보스턴의 야경이 아주 멋있었다. 보스턴 둘째 날, 우리는 명문대학이 아닌 명문고를 방문했다. 바로 Andover (Philips Academy)와 GDA (Governor Dummer Academy)였다. 미래에 내가 갈 수도 있는, 그것도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첫 번째 방문한 Andover는 희망차게 들려왔다. 나는 솔직히 평소에 내 장래와 적성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구체적으로 유학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문과와 이과 선택은 공부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인지 아주 나에게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유학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민사고를 가고 싶었던 나는 구체적으로 그 학교에 대해 아는 것은 단지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것, 그런 것이었다. 민사고 학생들은 영어로 공부해서 외국대학을 진학하는데 어차피 영어로 수업하고 공부하는 것이니 차라리 영어의 본고장 미국에서 Andover를 다니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입학 지원을 할 때는 영어에서 어렵다는 TOEFL, SSAT들을 치고, 또 ESSAY를 써야 했다. 나는 TOEIC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말 미국은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아마 한국 내신은 신뢰를 하지 않고 TOEFL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유학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많은 양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유학을 가거나 안 가더라도 한국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Andover 견학을 마치고 GDA로 갔다. GDA는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로 유길준 선생이 한국인으로서는 이 학교의 첫 번째 유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학교는 Andover와는 달리 친숙함이 느껴졌다. 아마 한국인들이 편입한 경우도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와서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쨌든 미국의 고등학교는 기숙사부터 편의시설까지 달랐다. 명문고를 둘러보고 나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호텔에서 한 밤을 지냈다.



나의 황금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중3, 유인상)

어느덧 내 나이 열일곱 살. 초등학생이었던 것이 엊그제인 것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라는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내 나이 때에 인생이 결정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난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긴 그래서 이렇게 미국으로 그 큰 돈을 주고 온 거지만 말이다. 이곳에는 과학고에서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 입학이 확정된 형이 한 명 있다. 늘 어릴 적에 내가 꿈꾸던 미래를 걷는 형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럽지는 않다. 옛날 같으면 무척 부러웠을 테지만 과학고나 카이스트 쪽으로 가면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커서 학자나 그런 과학 쪽으로 직업을 갖고 싶은데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의 유명한 대학 보다 포항공대나 카이스트가 나을 것 같은데… 복잡하다.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길이, 나의 미래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 우선 내가 해야 될 일은 지금까지의 나의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여유롭게 살아온 것 같다.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 그 놀 시간에 단어를 조금만 더 외웠어도 책을 더 봤어도 지금의 내가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서도 또 돌아서면 바뀐 게 하나도 없는 내가 되고 만다. 아주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번에는 뭔가 큰 변화가 필요하다. 여러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렇게 할거라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정말 이번엔 각오 단단히 할 것이다.

그리고 영어를 엄청 열심히 할 것이다. 앞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영어가 최우선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지금 이 세계에 영어를 모른다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단어, 듣기, 읽기 위주로 시간 남을 때마다 아니면 내가 시간을 짜내서라도 영어할 시간을 만들 것이다. 떠 복습을 철저히 할 것이다. 예습까지 하면 좋겠지만 그것까진 좀 힘들 것 같다. 그러니 복습만이라도 제대로 할 것이다. 어느 책에서도 봤지만 복습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력을 길러야겠다. 그 스탠포드를 졸업하신 아저씨도 말씀하셨듯이 공부나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특히 여기 미국에 와서 절실히 느꼈다. 이제 PC방 그만 가고 운동 좀 해야겠다.

이런 잡다한 것들이 내 인생의 황금기, 나아가서 내 인생을 결정지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걸 꼭 명심하고 내 스스로 갈고 닦아야겠다. 누구보다 뛰어난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중1, 이규연)

1. 나의 목적
나는 법의학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하버드 의대로 가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또 나는 고등학교는 GDA로 가고 싶다. 쵸트와 필립스는 나랑 조금 멀기도 하고 너무 높기도 한 것 같아서 난 GDA로 가고 싶다.

2. 현재 상황
지금 나의 현재 상황을 보자면 나는 곧 중2가 될 중학교 1학년 생이다. 성적은 지금의 나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고 열심히 하는 만큼 서서히 오르고 잇다. 지금 내가 제일 잘 다루는 악기는 ‘오카리나’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을 하면 손이 꽤 아프던데 난 더 열심히 할 것이다.

3. 1,2번 비교하여 고쳐야 할 것
내가 GDA에 들어가려면 지금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특히 영어와 수학을 열심히 해야겠다. 영어는 문법도 열심히 해야 되는데 나는 아무리 외워도 항상 잊어버린다. 또 토론을 잘 하기 위해서 회화도 열심히 해야겠다.

4. 어떻게 고칠까? (구체적으로)
우선 영어는 단어와 숙어, 그리고 idiom(관용적 표현)을 외우고 문법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또 난 SSAT와 TOEFL을 준비해야겠다. 지금 나는 TEPS를 준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TEPS를 공부하면 TOEFL을 준비하기가 쉽다고 한다. 지금 내가 TEPS를 준비하고 있는 이유는 내신 때문인데 생각해 보니 유학에도 좋아서 기분이 좋다. 또 SSAT나 SAT 때문이라도 단어를 많이 외워야겠다. 회화는 유학을 가서 계속 외국인과 접촉한다면 늘겠지만 우선 Professor, Mc Donald(Mark)에게 자주 전화 하고 E-mail을 자주 보내고 만나서 회화를 늘리는 방법과 이야기를 자주 해야겠다. 난 원래 영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영어는 미국이 더 괜찮은 것 같아서 지금은 생각을 바꾸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 수학은 지금 우리나라가 하는 방식, 그러니까 공식을 외워서 대입을 하는 것보다는 미국이 하는 것 처람 논리적, 창의적으로 하고 직접 해 보아야겠다.

물론 예습, 복습도 열심히 해야겠다. 사람들이 모두 예습은 학기 앞서는 게 좋다고 해서 나는 지금 2학년 1학기에 배울 것을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과로 나가기 위해서 난 TEXT(화학, 물리, 생물, 지구과학)을 보면서 공부하고 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래도 노력을 해야겠다.

5. 어떤 결과, 언제까지, 무슨 결과.
4번에서 한 것처럼 열심히 한다면(더 열심히 애야 하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아마도 GDA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SSAT를 해야 하니깐 영어 문법을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쓰는 건 엄청 잘 하게 될 것이다. GDA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하버드 의대에 들어갈 것이다.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법의학과 그냥 의학도 공부할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난 국 외에서는 법 의학자, 국내에서는 의사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적은 것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난 정말로 유학을 오고 싶다. 안 되면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지만 못 가게 할 부모님도 없다. 부모님은 나를 오히려 믿어 주실 분이니 나는 걱정도 없다. 또 부모님을 실망시키기 싫다. 외동딸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우선 난 내 꿈 때문이라도 꼭 유학을 해야 할 것 같다. 또 미국은 법 의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좋다. 그건 CSI를 보면 알 수 있다. 난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나의 비전 (중2, 장새결)

나의 비전은 오래 전부터 교육계 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좋아 보였고, 또 우리 집안이 교육자 집안이라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는 게 매력 있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재미있게 배우지 못해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재미있게 배우게 하고 싶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선생님이 될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중학교 선생님이나 교수가 되고 싶다. 내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고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우선 내가 조금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야 할 것 같다. 한 번 친해지고 나면 괜찮은데 처음에 낯가림을 너무 심하게 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웬만해선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을 남이 알기 쉽게 알려주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을 좀 더 쉽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된다. 그리고 나는 남에게 잘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가르쳐 준 것이 잘못된 것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렇지 않으려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아는 게 더욱 더 많으면 이런 것은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다.
우선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친해지고 그러면서 나의 성격을 고쳐가면 될 것 같다. 성격은 커가면서 조금씩 바뀐다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 내 성격도 꽤 많이 바뀔 것이다.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봐야겠다.
두 번째로 내가 남들이 알기 쉽게 설명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 볼 때 내가 아는 대로 설명하면 아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쉽게 알려 주어야 하는데…… 이 훈련을 위해 학교에서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들을 물어 볼 때 그 문제를 더 쉽게 알려줄 수 있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봐야겠다.
세 번째로 내가 가르쳐 준 것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나는 친구들에게 알려 줄 때 그게 맞는 답인지 걱정이 된다. 이런 것을 고치려면 우선 나의 생각에 자신감을 갖고 내가 아는 지식이 더 많아야 나의 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신감을 가지려면 많은 지식이 있고 그 지식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이 배우고 더 정확히 배워야 한다. 앞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 해야지.


내 평생에 이루고 싶은 101가지 (고2, 이다솜)
1. 전 세계적인 외교관이 되는 것
2. 전교에서 1등 하기
3. 부모님 해외 여행 보내 드리기
4. 친구들과 무전으로 여행가기
5. 예일대 졸업하기
6. 하버드 대학원 졸업하기
7. MIT에서 천문학 박사과정 밟기
8. 피아노 다시 배우기
9. 가족들과 여행가기
10. 덜렁대는 습관 고치기
11. 원 없이 공부해 보기
12. 아주 이해를 잘 해주는 멋진 부모 되기
13. 로맨틱한 연애 해 보기
14.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음식 사 먹기
15. 나의 스승님 찾아 뵙기
16. 골든 벨 울리기
17. 남편에게 성경책 선물하기(가족들에게)
18. 통일되면 걸어서 백두산 가기
19. 교회에서 봉사하기(반주 말고)
20. 우리 아이 인간 만들기
21. 쉬지 말고 기도하기
22. 항상 기뻐하기
23. 범사에 감사하기
24. 틈틈이 성경 읽기
25. 친구들과 음악회 열기
26. 자원 봉사하러 다니기
27. 밤 세서 무언가를 해 보기(No 컴퓨터)
28. 십대들의 쪽지에 후원 하기
29. 의사 친구 사귀기
30. 운전면허 따기
31.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친해지기
32. 가족들과 주말마다 영화 감상과 독서로 시간 보내기
33. 혼자서 여행 다녀오기
34. 제자 키우기
35. 가족 모두가 건강하기
36.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하기
37. 우리 아버지! 교회로 인도하기
38. 그랜드 피아노 사서 나만의 음악실 만들기
39. 책 쓰기(30권 이상)
40. 요리사 자격증 따기
41. 몇만 명 앞에서 강의하기
42. 컴퓨터 자격증 따기
43. 한 달에 5권 이상 책 읽기
44. 예쁜 인테리어 한 집에서 살기
45. 유명한 영화배우와 친분 쌓기
46. 내 전용 경비행기 갖기
47. 중국에 내 땅 사기
48. HSK 11등급 받기(최고)
49. 번지점프 하기(고소공포증 퇴치)
50. 내 모교에 기부하기
51. 찬송가 작곡하기(작사)
52. 다이어트 성공하기(10kg 감량)
53. 펜팔 친구 직접 만나기
54. 놀이동산 짓기(디즈니랜드와 같은)
55. 내가 기부한 학교에 동상 세우기
56. 세계 7대 불가사의 답사하기
57. 사전 하나 외우기
58. 세계적인 논문 발표하기
59. 무인도 가서 일주일만 살아 보기
60. 진정한 친구 사귀기
61. 밤새도록 공부하기(집중!)
62. 등산하기(에베레스트 정도)
63. 망원경 수집하기
64.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하거나 춤 춰보기
65. 원 없이 쇼핑해 보기
66. 하루도 빠짐없이 10년 동안 일기 써 보기
67. 세계 일주하기
68. 남편과 교회일 하기
69. 시 써보기
70. 신문 1면에 나와 보기(좋은 사건)
71. 뉴스에 보도되기
72. 팬레터 1,000통 이상 받아 보기
73. 골프 배우기
74. 문화생활 즐기기
75. 카페 빌려서 파티 하기
76. 부모님 금혼식 해 드리기
77. 친일파 후손들을 대한민국 땅에서는 절대로 못살게 하기
78. 국가유공자(들의 후손)에게 격려금과 장학금 지불하기
79. 내 아이들 세계 명문학교 보내기
80. 새벽기도 꾸준히 나가기
81. 외무부 장관 되기
82. 왜곡된 역사 바로 잡기
83.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을 세계적으로 승인 받기
84. Sea of Japan이 아닌 Dong Sea로!
85. 나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기
86. 영화에 출연하기
87. 앙드레 김 패션 쇼의 모델 되기
88. 새로운 위성(행성)발견하기
89. 우리나라 횡단하기
90. 주님 것은 늘 구별하기
91. 내 전용 뷰티샵 만들기
92. 대학교 이사장 되기(혹은 총장)
93. 예일대 입학할 때 미리 사 놓은 머그컵 깨고 티셔츠 입고 등교하기
94. 미국에서 정모 하기
95. 우리나라 횡단하기
96. 교회에서 결혼하기
97. 신혼여행은 청바지와 운동화로, 배낭여행!
98. 돈 많이 벌기
99. 나만의 별장 짖기
100. 외국인 친구들 많이 사귀기
101. 잠자면서 세상 마치기(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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