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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42차 호주연수(10년 후 나의 모습)
작성자 관리자 이메일 samushil@gmail.com
작성일 20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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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우주)

 

아마 직장에 다니고 있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안정적인 직장에 남들보다 연봉이 좀 높다. 은행에는 모아둔 잔고가 천만원정도 있다. 20살때부터 모아둔 돈이다. 부모님께 한달에 한번 용돈을 드린다. 월급의 1/5정도 드리고 싶다. 같은 해의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동기들과의 모임을 가진다. 1/10정도는 그 모임이 없어도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다. 대기업이어도 좋을 것 같고, 중소기업도 좋지만 젊은 나이에 높은 위치이고 싶다. 기업에 취직을 한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피아노와 기타를 잘 친다. 노래를 무척 잘 불러서 그 사실을 모두가 안다. 몇년 전에 취미생활로 섰던 작은 뮤지컬공연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을 만난다. 클라우드에 멜로디와 가사를 직접 써서 올린 노래를 듣고 제의가 들어와 저작권료를 받는다. 주식을 많이 공부하고 투자하는 것마다 성공한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다. 작게 사업을 한다. 그 일 때문에 추종자가 몇 명 있다. 그룹을 꾸려 작게 시작한다. 조금씩 성공하여 직장을 그만둔다. 작은 사회적 기업의 여성 CEO가 된다. 사장이 아니고 대표직이어도 된다.공동 CEO가 있어 역할 분담이 잘 된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강연을 나가 여태까지와의 CEO들과는 다른 친숙한 모습을 보여 미래에 대한 영감을 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걸 좋고 값싼 식품사업이면 좋을 것 같다. 학교 근처에 체인점이 위친한다. 장애인, 노인 등 취직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페이를 주며 편한 환경에서 일하게 하고 싶다. 교육청 등에서 시상한 학생들의 발명 아이디어를 읽어보는 팀이 있어 상품화 시키고 싶다. 저작권료를 주고 시상을 하고 말이다.

 

기업 홈페이지에 항상 아이디어를 받는다. 광고, 상품,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조언을 얻고 괜찮은 것은 연락을 취해 채택하여 사용한다. 장황하게 썼지만 이리도 게으른 내가 CEO가 되면 잘할거라는 보장이 없어 직장에 취업해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으로 만족한다.

 

학교근처에 코인 노래방을 세운다. 싸게 운영한다. 내가 직접 하지는 않고 누군가에게 위임을 한다. 노래방쪽에서는 못 가봤던 나라들은 다 갔다온 상태이다.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등 고2때 친했던 친구들과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사이이다. 서로의 고민들을 들어준다. 봉사단을 설립한다. 영어회화가 자유롭다.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도 구사할 수 있다.

 

스타일이 조금은 CEO라는 말이 듣고 싶다. 모든 장르의 노래를 많이 안다. 빈지노와 악수했다. 피부의 흉터가 없다. 학창시절과 달리 살이 빠져 날씬하다.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없고, 날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맛집을 함께 다니며 포스팅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미식가 체험 같은 걸 가끔 한다. 결혼할 만한 사람과 알게 된다. 5~7년 뒤 결혼한다. 인간관계가 좋다. 상식이 많다. 유머감각이 있다. 학창시절과 달리 조신한 면이 있다. 동생과 자주 연락하고 지낸다. 부모님이 일을 하지 않고 여가를 즐긴다. 봉사단을 설립하지 못한다면 많은 봉사에 참여한다. 기부를 많이 한다. 옷이 많다. 일주일에 1권 정도 독서를 한다. 개인 노트북이 있다. 지리에 대해 잘 안다. 정치에 대해 잘 안다. 식욕이 좀 준다.


 

(3, 박예린)

 

대학을 졸업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후로부터 하루하루 지나 몇 해가 훌쩍 지나갔구나.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 아무런 일도 없이 흘려 보낸 건 아닌데. 정말이지 돌이켜보면 하루하루 치밀하게, 건강한 일정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냈어.

중학교때만해도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줄은 몰랐는데 합격소식을 들었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나. 아직 난 내게 국어국문학을 가르쳐주셨던 교수님과 가끔 메일을 주고 받아. 그분이 읽어보라고 알려주신 책들이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지. 아무튼 여러모로 대학 생활은 상상 이상이었어.

 

소명여고에서 친해진 나의 소울메이트 친구들과도 쭉 연락을 해갔는데 우리들은 매년 두 번은 꼭 다같이 모여서 년초에 적어낸 한해 목표를 연말에 서로 읽어보고, 얼마나 이뤄냈는지 얘기하고 있어, 근데 사실 지금이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비행기 안이라, 올해는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래도 가기 힘들면 전화로라도 얘기해야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한참...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릴 때는 내가 스무살 때 살아있을지도 의무이었는데, 3때부터는 메일을 주고받던 ok작가님 말대로 난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거야.

 

자해하는 것 때문에 걱정되던 언니도 내 설득으로 자해도 끊고 잘 살아있고, 옛날에 한 약속대로 같이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해서 지금 앞자리에서 숙면중이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잘 살아줬으면!)

 

이젠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도 할테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번역일도 계속 할거야. 그동안 번역한 책이 꽤 되어서, 얼마전에 그 수가 두자릿수를 넘겼어. 처음 할 때가 제일 힘들었지. 그 다음부터는 요령도 생겨서 일취월장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게 너무 뿌듯해.

이러기 위해서 일본어 자격증, 한자자격증을 전부 1급을 따 내었고, 번역사 자격증도 진작에 땄지. 아직도 공부할 게 많아!

 

이렇게 사는 것도 정말이지 십대의 내겐 문제가 너무 많아서 그걸 자각하고부터는 몇 년에 걸쳐 노력해서 지금은 전부 고치게 되었어. 뭘 어떻게 해야 됐는지도 몰랐던 때에 비하면 큰 발전이지. 삐툴어져있던 그 때 내 철없는 행동을 받아주고 참아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면서도 죄송해. 워킹홀리데이가 끝나면 하루빨리 돌아가 다 같이 살 큰 집을 사드려야지. 지금까지 모은 걸 보면 엄마가 말씀하셨던 4층 집 게스트하우스도 가능할 것 같아! 부디 두분 다 그 때까지 그리고 그 뒤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계시길.

 

아직도 할 일이 많아. 하루하루 포기하고 미래에만 기대를 걸며 항상 잠만 자며 현실에서 도피하던 중학생 때 연수를 떠나 내 문제점과 함께 알게 된 건, 하고 싶은 건 지금 당장 하라는 거야. 오늘 할 수 없는 건 내일도 할 수 없다고, 오히려 더 큰 문제로 다가올 뿐이라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면 지금 행복하기 위해서 힘껏 발버둥쳐야 된다는 거지. (사실 그보다 더 있지만)


 

(3, 김지희)

 

28살의 나는 전남대학교 양의예과를 마치고 신경외과 공부를 쭉 하여 전대대학병원 어시스트로서(인턴) 레지던트, 집도의 과정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19년후의 나의 모습)

 

대학과정을 끝냈다. 드디어!! 집도의가 된 것이다. 꿈에 그리던!! 어시스트로 있을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 공부해 두기를 참 잘한 것 같다.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시험 전에는 많이 걱정하고 두려워했었지만 이후, 전대 양의예과 합격한 순간 엄청 기뻐했었지, 고생 시작인지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춘삼이, 귀돌이도 고생이 참 많았었지, 엄마가 제대로 밥도 챙겨주질 못하고, 들어오면 픽 쓰러져 잠들어 버리려 할 때마다 고생도 했고. 과제 할 때마다 무릎위에 올라와 놀아달라 하는건 정말 밉상이었지만 그래도 수고 많았다. 귀돌이!춘삼이! 공부하면서 교과서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고등학교때까지는 그나마 양이라도 적었지. 대학 들어와서는 복사해 다녀야 할 정도였으니 할 말 다했지만, 그 덕에 복사집 아저씨와 친해진 건 좋은 결과. 여튼, 난 해냈다.(내가 이제 왕선배다!)

 

10년간 나 때문에 고생했던 사람이 몇이였나. 부모님, 고양이들, 사촌, 친구들... 이제부턴 하나하나 천천히 돌려 줘야겠다. 이제 나는 집도의니까! 너무 신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어때! 차차 집도 사 나가고 하면 되니까. 이제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사람을 치료하는 일의 총 책임자인 내가 실수하면 되겠어. 이 생각때문에 어시.레지던트 때 열심히 배웠으니까(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친한 선배들이 많았어서 다행이지.)(이제 내가 짱이다!) 조카들이 보면 무슨 어른이 무슨 주책이냐 그럴것도 같다만.ㅋㅋ(이 타이밍에) 세대차이 극복을 위해 화이팅! 하여간 이제 나는 전남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전문의가 된거다. 영향도 있다. 일주일에 그래도 한 편 이상 영화를 보기도 했고 책도(교과서 제외) 세 권 이상 읽었고,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참 즐겁게 보낸 것도 같다면. 그러고보니 그림이나 정리하는 일들도 많이 는 것 같다.(역시 인체가 중요해) 인정받고 사는게 이렇게 즐거울 줄은. 이상으로 서른살 김지희의 일기를 마친다.

 

(20년후의 나의 모습)

벌써 집도의가 된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아직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고 여전히 의사다. 한가지 달라진 점을 쓰자면 좀 더 인정받고 있다는 걸까. 시간이라는 게 참 대단 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에 의사가 있냐는 방송이 나왔던 것, 환자는 단순하게 체한 거였었지만 말이야. 그 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의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고 벌써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가 되었는데 보자. 내가 어릴 때 바랬던 꿈들 중 뭐가 이루어졌을까? 고양이 두 마리, 귀돌이와 춘삼이. 지금은 아주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되어가는 내()길 고양이들,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 얘들아. 부모님께 효도. 바쁘더라도 꼬박꼬박 찾아가고(되려 귀찮게 보실 것도 갔다만은) 최근에는 올라오시게 만들어서 죄송하지만, 그래도 제주도에 집 한 채 사드린 건 잘한 일 같다. 아픈 일 있으면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의사 딸을 두고 숨기지는 않으시겠지. 두분 모두 참 고생 많이 하셨었는데.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 일주일에 영화 세편 보기. 이건 생각할 때 만큼은 참 즐거울 것 같았는데 보다 보니 지치기도 하니까 시간이 갈 수록 세편에서 두 편으로 줄어버렸군, 내가 즐겁자고 보는 거니까 뭐, 보고 싶을 때 보면 되는 거지(이거 괜찮은 생각인가?) 차라리 집에 세트를 들일까? 아니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VIP도 얻었는데)하지만 집에서 춘삼이, 귀돌이랑 보는 것도(이러면 너무 많이 볼 것도 같고.. 모르겠다. 좀 더 고민해 봐야지.) 의사가 되는 것, 생각보다 이게 참 뿌듯하단 말이야.

 

전에는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늘 보던 찡그리던 표정들이 퇴원할 때는 밝게 웃으면서 고맙다 하는건.. 실력 있는 김지희! 무엇보다 인정받는 직업이니까. 고생에 대한 보람들이 있고. 이것 때문에 늘 웃고 다녀서 "선생님은 내가 아픈 게 즐거워요?" 하는 말을 듣기는 했어요.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찾기, 이것 때문에 고등학교 때 영어를 그렇게 했었지. 예과 과정에서도 하기는 했었지만 아직까지는 애매하지만 말이야. 부모님, 주완이와도 가고 화영이와도 가고, 지인 친구들과도 참 즐겁고 힘들었는데 갔던 곳이다. 숟가락을 하나씩 사 왔었지. 이번에 갯수를 한번 세어봐야겠다. 보자. 20! 유럽을 다녀와서 그런가? 되게 많이 다녀왔었구나. 나도, 또 뭐가 있었더라. 맞아 틈틈이 만화 그렸던 것도 있는데, 여행 다녀온 곳들이나, 지인들이 많이 물어왔던 것들로. 시간 내서 책으로 한번 엮어볼까? 개인 소장용도로. 팔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음 그건 살짝 고민해봐야겠다.

2036, 고민이 2가지 생긴 김지희의 일기를 마친다!


 

(3, 정지우)

 

- 나이 : 26     년도 : 2027

- 직업 : 심리상담사나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있을 것 같다, 아니면 초등교사가 되어 개별 상담을 할 것 같다.

- 과정 : 중학교 3학년 2학기부터 휴대폰과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목표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 꿈에 대해 찾아보고 그 꿈을 목표로 차근차근 나아갈 것이다. 내가 상담을 하게 된다면 전에부터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행동을 보거나 상담을 받는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후 그림을 그린 결과 과정등을 보고 그 사람의 상태나 심리, 성격등을 보는 종류의 상담을 할 것 같다.

 

전에 방학 숙제로 진로 탐색 인터뷰를 할 때 했던 학교 상담선생님의 조언을 생각해내어 상담관련 분야의 책들을 읽을 것이다. 대학교 심리상담과에 들어가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심리상담 및 다른 상담을 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학교 WeeClass선생님이 했다는 과정과 같이 자원봉사로 상담이 필요한 사람에게 상담을 해주고 그 상담내용을 녹음하거나 글로 옮겨 적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적은 상담 내용은 내가 강의를 듣거나 관련 내용을 지도하시는 교수님께 가서 내가 상담하는 내용이 맞는지 검사를 받고 상담방법 중 개선해야 할 점이나 잘못된 점 또는 잘 된 점에 대해 의견을 받고 고쳐나갈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쳐가면서 나의 잘못된 점을 개선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한후에는 대학원을 다니며 직장을 얻어 직장과 학업을 동시에 진행할 것이다. 직장은, 나는 학교에서 계시는 상담선생님이나 예술치료, 또는 사람의 심리를 보고서 사람의 마음 정서등을 아는 심리치료와 관련된 곳에 가고 싶다. 아마 학교 심리 상담선생님이 되고 싶어 그쪽으로 갈 것 같다. 학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기도 했으니 말이다.

 

- 생활 : 학교 심리상담사 학생들이 고민이나 생각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학교는 중학교로 출근을 해서 630분 사이에 하고 있다. 주로 심리상담을 하러 오는 학생은 학교에 생활이 문제가 있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학생 또는 학교폭력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가족중에 힘든 사람이 있는 학생이나 또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을 말하러 오는 학생들도 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후에 잠시 쉬거나 Board Game을 하러 오는 학생들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가 있거나 '집안에 큰일이 있는 학생들이 많구나' 라는 것을 느낀다. 또 혼자선 이 짐을 어떻게 지고 이어나갔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상담을 온 학생과 상담을 하며 같이 해결방안을 찾아나간다.

10년 전에 방학숙제로 했던 인터뷰 중 상담선생님이 말해주셨던 말 중, "자신이 상담한 학생 10명 중 5명은 그대로, 상담전보다 스스로 나아지거나 그대로이고 2명은 그대로 이거나 나빠지고 3명은 상담을 토대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 와 닿기 시작했다.

 

내가 상담한 아이 중 대부분은 그대로거나 조금씩 나아지지만 소수의 아이들은 엄청나게 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며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결과가 좋아져서 감사하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일주일 중 5일을 이렇게 반복하며 주말은 아이들의 고민을 머리에 담아 힘들지 않게 최대한 잊고 생활을 한다. 나는 그 일을 잊기 위해 취미생활인 캘리그라피를 한다. 주말이 아닌 퇴근후에도 가끔 이 일을 한다. 주말에는 교회를 갔다가 집에 들어와서 다시 월요일을 맞을 준비를 한다.


 

(3, 김서연)

 

나는 광고 기획자다. 멋지다.

 

1. 2021, 한양대 심리학과에 입학한다. 재수없이 입학한다. 교육과정이 많이 바뀌었다. 조별과제, 조가 운 없게 짜여졌지만 나는 버스운전사다. 절대 얹혀 가지는 않는다.

좋은 학점으로 2025, 나는 졸업을 한다.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서 준비중이고 명화나 현대미술, 그리고 경영에 관한 책들을 틈틈히 읽는다. 1년에 적어도 크고 작은 광고/카피 대회에 11회 이상 응모한다. 1 3회 수상이 목표다.

 

2. 인간관계를 그 동안 잘 쌓았다. 나는 인맥을 활용해본다. 주위에 광고쪽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 친해진다. 상관없는 직종이라도 자신감을 갖고 먼저 인사하고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다.

 

3. 대학원에서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은 2027년이고, 2026년에는 여행을 다니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여러 박람회, 전시회, 미술관등을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는다. 그리고 요리를 배운다.   만화/영화를 1주일에 2편씩 본다. 취업을 위해 여러 가지로 준비하고 자소서를 보내고 제일기획이나 대흥, 혹은 새로 생겨나는 참신한 광고대행사, 대기업계열사에서 인턴생활을 해본다. 꼭 광고관련이 아닌 부분에서라도 인사,경영,심리 등 경험을 쌓아본다.

 

4. 대학원을 끝마치고, 석사 학위를 따냈다. 박사 과정을 고려해본다.

2031년이다. 나는 6개월~1년정도 외국에서 일본이나 영어권나라에서 광고에 대해 배운다.

 

5. 2033, 대한민국 TOP 5안에 드는 광고 대행사에 좋은 성적으로 취직한다. 그 동안 나는 외국회사에서 인턴을 해 보았고 매주 메일을 주고받는 내가 좋아하는 박사님, 혹은 교수님께 이런저런 조언, 충고, 팁을 얻고 있다.

나는 절대 지각하지 않는다. 항상30분 전에, 혹은 그 이전에 회사에 와서 인사를 한다. 덕분에 사내에서 좋은 평판을 받고, 실적도 쭉쭉 올라간다. 자신감이 붙는다.

 

6. 2034, 승진을 한다. 아직은 광고기획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는 주로 카피를 쓰고 아이디어를 뽑아내며 상품을 가끔 분석하기도 한다. 아이디어 회의는 정말 힘들지만 광고 제작과정에 있어서 항상 앞에서 걸어가는 CEO팀을 보며 그 자리에 선 나를 꿈꿔본다. 그리고 내가 쓴 카피와 내가 참여한 광고팀은 대박이 난다. 나는 정말 중독성이 있게끔 광고 제작에 큰 역할로 참여했다.

2035, 승진을 또 했다. 가끔 일이 꼬일때도 있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름대로 즐거운 인생을 사는 중이다. 여전히 미술,경영,심리쪽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1주일에 1권 이상.

 

7. 2044, 운 좋게 10년 만에 CEO가 됐다. 나는 광고 제작에 있어서 항상 독창적인 생각과 객관적인 언변으로 광고주에게서 90%이상 광고를 따온다. 나의 광고팀과 함께 광고를 만들고 있다. 팀의 분위기가 좋다. 아이디어가 팡팡 터진다. 나의 광고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이 되었으면 한다.

 

8. 2045, 크게 인정을 받는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더운 신중하게 일을 진행한다. 슬슬 다른 분위기의 다른 방식의 회사를 찾아본다. 독특한, 또다른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서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9. 2050, 반년동안 국내여행을 한다. 해외여행도 한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작은 마을들이다. 또 반년을 세게의 전시회나 큰 박람회를 돌아다닌다.

 

10. 2052, 복직을 했다. 이번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광고에 접근해본다. 실패도 많겠지만 나는 끝끝내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CEO가 된다.

 

11. 2055, 나의 건강은 좋다. 매일 아침 30분씩 집 주위를 돌고있다. 나는 또 다른 회사를 찾고 있다. 나를 부르는 곳들이 많다.

 

12. 2055년 설치 광고를 크게 해본다.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생각될 수 있게끔 독특하고 내가 좋아하는 큰 광고들을 설치한다.

 

13. 2058, 모은 돈으로 작은 땅이나 건물을 하나 산다. 꼭 상권이 높은 지역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곳을 고를 것이다. 여전히 나는 광고를 만들고 있고 회사를 다니지 않고 나의 작은 사무실을 생각해보는 중이다.

 

14. 2060, 내 사무실을 찾는 이들이 많다. 나는 디지털 미디어 (TV나 온라인 등의) 말고, 설치광고나 포스터 쪽에 관심을 둔다.

 

15. 2067, 나는 은퇴한다. 모은 돈으로 조용한, 혹은 이쁜 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2, 조민희)

 

십 년 후의 나의 모습은 나는 25살이 되어 있고, 재수를 1, 2년을 하고 나서 연세대학교를 갔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들어가서 2년 동안 법에 대한 공부를 구체적이게 더 공부하고 로스쿨이 끝나기 전에 시험을 봐서 사법에 탈락해서 재시험을 본 뒤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2년 동안 또 공부한다.

 

사법연수원에서 시험을 통과하고 순위에 맞게 판사, 검사, 변호사를 고른다. 그렇게 성적이 좋게 나오면 검사가 된다. (30)

 

검사가 되어서 첫 출근 때 법원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근무할 사무실에 들어가서 모두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리고 신입검사가 되어서 선배검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배운다. 사소한 것들도 다 배우고 배웠던 내용들은 노트에 다 정리를 한다. 그리고 검사들은 앉아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밤마다 체력단련을 한다. 예를 들면, 줄넘기, 달리기 등을 한다.

 

그리고 내가 부족한 점을 내가 고친다. 그리고 나는 1 30개월 동안 선배들 옆에서 공부를 더 하고 더 많이 배운 다음에 첫 재판을 한다. 그리고 첫 재판 때 진다. 그래서 슬럼프가 온다.

슬럼프가 와서 힘들게 이겨냈다. 그리고 첫 재판에서 졌지만 그걸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다음 재판을 더더욱 신중하게 준비를 한다. 선배 검사님들을 따라서 선배검사님들이 재판하는 걸 본다. 재판할 때 필요한 것 등을 배운다.

 

그래서 두 번째 재판에서는 이긴다. 정말 기뻐한다. 그리고 주말 일요일에는 봉사를 한다. 고아원이나 요양원 등 봉사를 한다. 첫 월급 때 부모님에게 90%를 드리고 나머지 10%는 내가 가진다.

 

그리고 2년 뒤에 신입검사가 들어올 때 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준다. 그 전에 나는 신입 검사가 들어오기 전에 선배들이 시키는 것을 다 한다. 예를 들면, 커피타기 등 그렇게 신입 검사가 들어오면 내가 많이 도와준다. 나는 좋은 검사가 된다. 그리고 이성이 좋은 검사, 남을 배려하는 검사가 된다. 그리고 또 검사가 되었으니 부모님께 학생때보다 고마움을 더 많이 느끼고 더욱 더 효도를 한다.

 

그리고 10년이 더 흘러서 나는 남을 배려하고 인성이 좋은 검사가 되어있고 휴가를 내서 부모님과 노르웨이 여행을 간다. 그리고 시험을 쳐서 시험에 통과해서 높은 검사가 된다. 그래서 내가 퇴직할 때까지 검사를 한다. 검사를 퇴직하고 나는 일본,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전세계를 여행하고 싶다.


 

(2, 손다연)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역에서 괜찮은 고등학교로 가서 3년 내내 공부를 열심히 하여 놀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대학교를 갈 것이다. 그리고 돈을 모아서 성인이 되서 자취나 기숙사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로또를 한달에 2번정도 산다. 그리고 당첨이 되면 학비로 사용할 것이다. 교대에 가서 선생님이 될 수 있게 공부를 할 것이다. 서울대에서 공부하며 인간관계도 넓히고 고등학교에서 사귄 친한 친구들과 가끔씩 시간을 조정해서 만나며 여가생활인 인라인이나 보드를 타며 에쁘게 꾸밀 것이다.

 

라식을 하고 상황을 봐서 쌍수도 할 것이다. 코에 필러도 맞고 머리를 허리까지 길렀다. 아이폰을 알바를 해서 사고 아날로그 필터를 샀다. 그리고 노력끝에 선생님이 되었다. 수학선생님이 되었고 과학도 할 수 있다. 수학선생님이 25살에 비정규직이었다. 26살에 정규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축하파티를 열심히 하고 선생님생활을 한 학교에 정착해서 열심히 시작하였는데 학생들이 너무 착한 곳에 가서 잘 생활한다. 고등학교인데 상담도 가끔씩 해주고 선생님들과 관계가 좋아진다. 그래서 여행도 다니고 회식도 자구 나간다. 고등학교친구들과 연락은 뜸해졌지만 그래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처음에는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점점 월급이 높아져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학생들도 초대해 놀고, 행복한 삶을 즐긴다. 운동도 틈틈이 하고 피부관리도 열심히 해서 젊어 보이고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12일로 다니면서 적당히 놀고 공부도 꾸준히 한다. 30살 정도가 되면 학교에서 인정받는 선생님이 되고 나름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이 지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에 나의 이름이 올라가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집으로 돈을 한달에 100씩 붙인다. 캘리그라피도 공부해서 직접 한 수제엽서도 팔고 입소문을 타서 사람들이 알아주는 엽서에 들어간다. 31살까지 월급이 500~800이 되게 오르고 언어도 많이 공부해서 35살까지 돈을 많이 모은 다음에 방학때 다른 나라로 혼자 2주간 여행을 간다.

 

인라인은 선수급으로 탈 수 있는 실력이 되고 향수를 좋아해서 향수를 모을 것이다. 만들기 체험도 자주 다니며 내 시간을 많이 가지며 살 것이다. 집에 강아지를 2마리를 키우며 데리고 자주 돌아다닐 것이고 강아지에 대한 책을 읽으며 짬짬이 남는 시간을 이용할 것이다. 또 영화를 보며 문화생활을 할 것이고 반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하며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하고 수업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관계 문제에 문제가 있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화를 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다른 나라에도 간다. 그리고 로또에 대박 나서 좋은 차를 사서 운전면허를 따고 화장을 배우러 다닌다.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그 스케쥴 위주로 여가, 문화, 취미생활을 할 것이다. 그리고 화장품(명품)을 컬렉션으로 전시장에 보관한다. 선생님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학생이 알기 쉽게 가르치면서 학생 생일을 간단히 챙기며 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2, 박소연)

 

10년 후에 나는 25살이다. 나는 서울대 수의학과 4학년이다. 작은 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고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자원봉사도 하고 다니고 있다. 나는 고양이를 유기요로 데려와서 받은 상처가 잘 아물게 정말 정성을 다해서 보살펴 주고 있다.

운전면허는 2학기 때 따놓고 아직은 학생이니까 차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었던 학과였기 때문에 공부를 정말로 열심히 하고 있다.

5년 후 30살에는 전문의가 되어서 큰 동물병원에서 의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동물들이 많이 오고 내 능력을 최대한 끌어 모아서 정성을 들여서 치료해준다. 2~3년 후에 어느 정도의 돈이 생겨서 마당이 있는 주택을 샀다. 집에서는 고양이 3마리와 큰 개를4마리 정도 키우고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동시에 같이 돌보는 것은 많이 힘들지만 보람이 느껴지고 엄청 즐겁다. 한 달에 한번씩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있다. 차는 사지 않을 것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출퇴근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차는 무서워서 못 타고 다니겠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1시간 30분 동안 집 주변 공원을 강아지들과 산책한다. 고양이도 데리고 가고 싶지만 무서워해서 데리고 갈 수 없다. 고양이들한테는 밥만 주고 나온다.

 

일요일에는 1시간 늦게 일어난다. 7시에 일어나서 평일과 같이 1시간30분을 개들과 산책한다. 일요일에는 방에서 스마트폰을 하거나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보거나 동물들에게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가끔씩은 친구들도 만나고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휴가가 생기면 부모님 집으로 내려간다. 그렇지만 부모님 집에 오래있을 수는 없다. 마당이 있긴 하지만 좁아서 개들도 힘들어 하고 고양이들도 적응이 잘 안되고 나도 일이 있기 때문에 2~3일 정도만 있다가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온다. 가끔씩은 부모님과 가족들이 우리집에 올 때도 있다. 많이 넓은 편이 아니라서 가족이 우리 집에 오면 언니와 나는 내 방에서, 부모님은 다른 방에서, 동생은 거실에서 잔다. 뚱이는 요즘 늙어서 힘이 없다. 그래도 난 뚱이가 제일 좋다. 뚱이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내 방에서 나랑 언니랑 잔다.

가족이 우리 집에 오면 우리집에만 있지 않고 다른 곳들도 놀러 나간다. 나는 귀찮아서 나가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언니는 내 고양이들을 엄청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창식이'를 제일 좋아한다. 창식이는 검정색에 귀가 쫑긋 서 있고 날렵한 몸에다가 노란눈을 갖고 있는 12개월 고양이다.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다.

 

35살 정도가 되면 세계여행을 다니기 시작할 거다. 가까운 나라부터 먼 나라까지 다니고 있다. 여행을 다닐 때는 언니한테 애들을 맡길 것이다. 언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병원일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풀리지만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어려워진다. 공부도 대학생 때만큼은 하고 있어서 잠도 얼마 자지 못한다. 그래도 아침운동은 꼭 한다. 요즘은 잠도 못 자고 잘 씻지도 못한다. 아침운동도 1시간으로 줄였다. 일과 공부에만 엄청 집중하게 된다. 큰 수술은 보통 내가 하기 때문에 일이 더 많아지고 몸은 더 피곤해지는데 잘 쉴 수 없다. 일요일에는 잠만 자고 있다.

다른 동물들 살린다고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힘들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 일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2, 양규리)

 

십년후의 나의 모습은 갓 경찰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다. 경찰대를 들어가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경찰대학교 교수님과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 분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교수님께서 들어가기 위한 방법과 어떻게 공부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경찰대학교에 입학해서 여러 기술들도 배웠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또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여러 운동을 배우고 있다. 학생시절때도 가끔씩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키웠다. 또 키도 크기 위해서 밥도 골고루 잘 먹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집주변 몇바퀴를 뛰고 체조를 했다. 경찰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바로 근무하는 곳으로 배정되었다. 다행히도 다른 지역이 아닌 부모님이랑 가까운 대전지역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oo경찰서였는데 엄청나게 컸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큰 경찰서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았다. 쭈뼛쭈뼛하며 경찰서에 들어갔는데 고참선배들부터 나랑 몇개월차이만 나는 신입경찰관들도 있었다. 몇 명은 공무원시험을 봐서 들어왔는데 나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어떤 선배 경찰관 중 한 분이 나에게 와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고향이 어디인지, 가족은 누구누구인지, 경찰관으로써 다짐들을 말했다. 한분한분씩 잘해보자! 이러면서 악수를 했다. 여자경찰관분들은 다 인상이 좋으셨다. 후배들을 무척 잘 챙겨주셨다. 난 여자라서 좀 걱정되었는데 여자경찰 한마디로 여경분들도 몇 명계셔서 안심이 되었다. 제일 선배이신분이 나에게 인사를 하시면서 경찰대에서도 배웠지만 그래도 실전은 확실히 다르니까 조심하라고 걱정 섞인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대학교에서도 수없이 실험하고 경험해봤지만 실전은 처음이기에 살짝 걱정이 되었다. '만약 범인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가다 놓치면 어떡하지?' '안 가겠다고 길거리에서 난장판을 피워 경찰관을 곤란하게 만들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옆에 선배분께서 나에게 범인 가족이나 출동 신고 받는 법을 알려주셨다.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거의 세웠다. 다음날에 경찰서로 출근하면서 어떻게 신고접수를 받을까 고민을 하다가 고민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신고접수를 받았다.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는 신고였다. 이렇게 큰 신고가 처음으로 들어와서 당황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고참선배들과 같이 출동을 했다. 신고를 받고 도착해보니 주택이었다. 집안도 온통 난장판이었다.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려 있고 바닥에는 물건들이 다 떨어져있었고 비싼 반지들과 목걸이들만 사라졌다. 우리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지문채취, 방검사, 범인의 것이라고 지목되는 것들만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리고 CSI과학수사대를 불러 나머지 범인을 찾는 과정을 맡기고 경찰서로 돌아왔다. 긴장이 풀려서 의자에 앉는 순간 또 신고접수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집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신고를 받았다. 아파트에 들어가 현관문에서부터 연탄을 태우고 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문을 열라고해도 열지 않으니 도구를 가지고 문을 열었다. 문을 따니 화생방처럼 집안에는 온 연기가 나 있고 화장실에서 연기가 새나오는 것을 보고 화장실문을 급히 열었다. 얼마나 미세하게 준비를 해놨냐면 구멍이란 온 구멍은 막아놓고 숯불연탄은 몇 봉지를 쌓아두고 그 냄새와 연기, 가스를 마시고 있었다. 바로 화재경보음이 울려 이웃이 신고를 한 케이스였다. 자살시도를 하려고 한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같은 여자로써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상담도 했다. 나는 경찰관이 이렇게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는 사람이란것을 처음 알았다. 자살시도를 한지 얼마 안되어 큰 피해는 없었지만 119랑 병원이랑 연락해서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가나 싶었는데 또 신고를 받았다. 신고를 받은 곳은 술집이었는데 그때 대학교 동아리파티를 한다고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나오던 중 한 행인이랑 시비가 붙어서 싸우게 되었다. 나이도 비슷해서 안쓰러웠지만 이렇게 경찰차안에서까지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재수없었다. 정신을 차리게 하고 집에 돌려보냈다. 이렇게 다시 하루가 끝났다. 경찰복을 정리하고 오늘 한 일을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교대로 들어오시는 분이랑 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집에 왔다.


 

(2, 백지훈)

 

- 평생의 나의 모습

 

10년후에는 아마 중학교때는 평범한 기초를 쌓고 단어를 외우면서 내 생활습관과 건강한 몸을 만드는데 신경을 쓸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학과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고민하고 공부를 할 것이다. 2030년으로 와서 내가 생각하기로 한 번 실패를 한 후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도전해서 공부를 할 것이다.

 

아마 모두가 하는 것처럼 20살에 서,,고에 있는 법대를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서 자취와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할 것 같다. 1년후에는 군대에 들어가서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몸을 조금 건강하게 해서 나올 것이다. 그럼 2025년쯤 되는데 그때 다시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3년 더 하다가 대학교를 졸업할 것이다. 아마 그때가 2028년일 것 같다. 또 대학교4학년때는 취직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아플 것이다. 로스쿨기간 그러다가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1년정도 공부를 할 것이고 그럼 2029년이다. 확실히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전문적으로 1년 정도 공부를 더 하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는 눈을 기울일 것이다.

 

2031년에 변호사가 될 것 같다. 나는 변호사가 되어서 이왕 법을 공부했으니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고 싶고 돈보다는 내 마음이 원하는 사람의 변호를 하고 싶다. 처음에는 지방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경험을 쌓다가 서울로 올라가서 변호사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다가 40대가 되면 법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조금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싶다. 예를 들어 취미로 골프도 하고 어렸을 때 내가 못해보았던 공부, 위험해서 할 수 없었던 스카이다이빙, 세계에 있는 선진국을 여행하며 재미있는 삶을 살 것이다. 아마 그때 나이가 되면 나는 '내가 법을 왜 했지?'라는 생각과 과거에 한 일 중 하나를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결혼을 안하고 싶지만 그때에 만약 결혼을 해사 아이가 생긴다면 부모님께서 나에게 항상 했던 공부해라, 게임 하지 마라, 잠 일찍 자라 라는 말을 할 것이고 왜 시간을 낭비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의 시야를 전세계로 높이는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은 50살 때까지는 할 것이고 항상 돈을 저축하고 아껴서 50대에는 정말 변호사가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 변호를 못 받는 사람들에게 변호를 무료로 해주고 싶다. 지금은 사춘기여서인지 모르겠지만 교회를 안 다니고 있는데 50살쯤에는 신실한 크리스찬이 되어 하나님께 내 삶을 바치고 싶다.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뜻) 60살쯤에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강의를 해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꿈을 한 발짝 나아가게 도와주고 싶다. 60대가 되면 도시보다는 시골로 내려와서 마당 있는 집에서 개와 여가시간을 보내며 건강을 챙기고 싶다. 만약 그래도 할 것이 남으며 시대가 발전해서 과거에는 해보지 못했던 것과 예술과 독서의 취미를 가지며 과거 사람들과 책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죽기에 좋은 나이는 80~90살인 것 같다. 너무 지구에서 삶에 집작 하지 않고 싶고 그때는 대략 2070년이어서 평균수명이 늘어나 빨리 죽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난 70~80살에 죽어서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서 지상보다 상상할 수 없이 좋은 일을 하고 싶다.


 

(2, 조민성)

 

나는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교수님께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 나도 언젠가는 교수가 되어 나 같은 인턴을 부려먹을 수 있겠지. 그리고 존경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하고 머리도 엉망이다. 나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자고 생활한다. 수술은 교수님이나 다른 의사샘들이 하시는 데 나는 근처에서나 아니면 영상으로 수술장면을 보고 공부한다. 의료용어들은 다 외운지 오래이지만 항상 되새기며 머리 속에 집어 넣는다. 오랜 경험과 숙련으로 완벽한 교수님들이기에 수술 실패는 거의 없다. 내가 여기에서 하는 일이 있다면 환자 상태를 체킹하고 수술전에 환자프로필을 정리하여 교수님께 갖다 드리는 것이다. 나는 수술이 완벽하게 끝난 환자를 볼때마다 내가 수술한것도 아닌데 뭔가 뿌듯하고 가끔씩 감사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그냥 겸손하게 넘기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고 교수님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오늘은 수술환자가 276명이나 있다. 물론 나는276명의 환자 프로필 상태를 다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담당 교수님의 담당환자 프로필 9명만 갖다 드리면 된다.

 

첫 수술은 편도아데노이드 절제 수술인데 이 수술이 오늘 세번째다. 딱히 어려운 수술은 오늘 없다. 물론 교수님이 하시는 거지만 나는 옆에서 보고 배운다. 오늘은 첫 수술전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환자 프로필 체킹이 잘못되어 시간이 살짝 뒤바뀐 것이다. 나의 잘못이니까 받아들이고 다음부터는 잘못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완벽하게 끝내셨다. 나는 수술중에 교수님의 행동을 하나하나 머리에 되새기며 외운다. 나는 가장 쫄따구이기 때문에 여러 전문의선생님들이 계신 곳에서 감히 나댈 수 없다. 사실 수술방에 들어가지는 않고 영상으로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를 수술방으로 이송해주기는 한다. 여러 의료책을 보고 영상을 보며 그것을 공부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고 배우는 일이다. 전신마취한 환자들은 수술이 끝난 후에 중환자실 비슷한 안정을 취하는 곳에서 의식이 확실히 깨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확인된 후에 병실로 이송되는데 그 일도 일부분은 내가 맡아서 한다. 병실은 이송된 환자를 내가 보기는 하는데 내가 하는 일이란 그냥 들어가서 한번씩 말만 건네주고 수술이 잘 끝났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나머지 확인은 담당의나 교수님이 직접 와서 하신다. 한마디로 내가 하는 것은 거의 공부밖에 없다.

수술이 벌써 4건이나 끝났다. 나는 바쁘게 프로필을 교수님께 넘기고 계속 수술책을 보며 뇌에 되새긴다. 시간이 지나 모든 수술이 끝나고 상황이 정리되고 밤 11시가 되었다. 나는 교수님께 잘했다고 칭찬을 받고 교수님은 귀가하시고 나는 병원에서 일을 슬슬 마무리 짓는다. 자기전에도 항상 수술이 어떻게 되었는지 공부하며 실질적으로는 새벽 1시쯤에 잠이 든다. 그리고 기상은 530분이다. 첫 수술은 8시지만 나는 오늘 환자 프로필을 대충 확인하고 교수님께 확실한 프로필을 드려야 한다. 나는 병원문을 제일 일찍 연다. 물론 병원은 항상 열려있지만 이비인후과는 6시에 다시 연다. 환자들은 바로바로 오기 시작한다. 주로 아침에 첫 수술을 하시는 분들이다. 6시전부터 기다리고 계시는 분도 많이 보았다. 다른 인턴들도 오고 나는 환자의 상태를 간단하게 체크한다. 수술부위가 맞는지 언제언제 병원에 왔고 오늘 몇시 수술인지 그리고 간단한 몸 상태를 체크해준다. 수술하기전에는 교수님이 한번 오셔서 마지막으로 체킹하신다.

 

오늘도 바쁘고 보람찬 하루가 될 것이다. , 나는 계속 병원에서 자고 생활하니까 집에 거의 못간다. 가끔씩 휴가나 이런거를 받아서 집에 갈 때도 있지만 정말 가끔씩이고 항상 거의 병원에서 지낸다. 솔직히 너무 바빠서 휴가를 포기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이 생활이 너무 보람차고 좋다. 나는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면역력이 좀 약해서 병원을 조금 다른 사람들보다 자주 갔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진찰해주는 의사가 정말 멋져 보였다. 수술도 2차례 했었는데 나름 자상한 교수님께 수술을 받았다. 너무 카리스마 있으시고 멋있었다. 다른 의사를 혼내는 것도 보았는데 그런 모습까지 멋있어 보이고 혼나는 의사마저도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계속 의사를 꿈을 꾸고 있었다. 중학교때에는 사춘기도 오고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긴 했지만 PC방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는데 중3때 의사에 대한 꿈을 확실하게 정하면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근처에 있는 서울고등학교에 가서도 미친듯이 해서 전교 5등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고 인터넷, 미디어를 항상 멀리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생각만 하여서 서울대 의과를 들어온 것이다. 나는 힘들지만 지금 생활도 너무 기쁘고 더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김영효)

 

2027 8 9.

 

오늘은 10년 전 호주어학연수에서 오늘을 예상하며 일기로 썼던 날이다. 난 참 그때 예상을 잘 했던 것 같다.

일단 난 아침일찍 일어나 중앙대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가서 연기연습과 숙제를 하고 일찍 잔다.

난 지금 대학교 2학년이고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물론 성적은 A+이다. 10년이나 지금이나 꿈을 향해 달리고 있고 10년 전보다는 독립을 하니까 ""이 약간 부족하다. 그리고 어제는 조별과제 때문에 조금 늦게 잤다. 그래도 결과는 A+이니 기분은 좋았다. 글씨체는 여전히 못 고쳤다. 주변에서 고치라고는 하는데 힘들다. 손톱은 이제 물어뜯지 않는다. 그리고 10년 전보다는 조용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중학교 시절이 참 부끄럽다. 10년전에는 많이 놀았던 것 같다. 노래방도 가고 친구와도 많이 놀았으니까. 뭐 지금도 나름대로 놀땐 논다.

 

운동은 10년전에는 6, 5개 정도 했었는데 이젠 다 안 한다. 공부를 해야 해서 새벽에 조깅을 할까 생각중이다. 뭐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지 하는 거니까. 연필 잡는 거는 10년 전과 똑같이 잡고 날려 쓴다.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다.

 

10년 전에는 관심사가 '운동,이성,음악'이었는데 지금은 '연기,이성,음악'이다. 운동을 안 하니 몸이 나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때도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약해보여 미안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옛날보다 조용해져서 그런지 조금 내성적이 되었다. 그래도 놀땐 외향적이다.

10년전에는 사춘기라 그런지 락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발라드가 더 좋다. 병에는 잘 안 걸린다. 운동을 해봐서 그런지 병에는 잘 안 걸린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거울을 보며 "잘 생겼다"하는 건 똑같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음식이 불고기, 돼지갈비에서 ""으로 바뀌었다. 그때는 폴더폰이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다.

 

지금은 오디션보러 다니기 바쁜데 그때는 운동하느라 바빴다. 지금은 주발에는 오디션을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데 그때는 새벽에 수영, 쇼트트랙을 했고 오전에 골프, 오후에 탁구를 했다. 어학연수를 다녀와서는 수영, 쇼트트랙, 골프를 하고 탁구는 안 한다. 뭐 조금 내성적이 된 거 말고는 바뀐 건 딱히 없는 것 같다. 지금 일기를 쓰는 내가 10년 전 영효에게 "너가 일기쓴대로 됐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만 마친다. 가 아니라 좀 더 쓸거다.

일단 대학교는 겨우 수시로 들어가고 학교생활을 무난하게 하고 학교 성적이 좋게 나오기 위해서 고등학교공부는 엄청 열심히 했다. 물론 과는 연극영화과이다. 연극영화과로 제일 알아주는 대학교가 중앙대여서 중앙대에 들어간거다. 군대생활은 내가 운동을 잘 해서 포상을 많이 받아 잘 지나갔다.


(1, 성선영)

 

- 사년후의 나의 모습-> 나는 치어리딩 국가대표가 되어 잘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댄스치어리딩과 스턴트치어리딩을 동시에 하는 그룹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또 단장을 맡아 댄스치어리딩에서는 센터에 서있을 것이며 스턴트 치어리딩에서도 역시 센터에서 있지만 flyer(하늘에서 동작하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또 여러가지 고급기술을 잘 익혀서 잘 할 수 있게 하고 지금 내 머리속에 있는 기술들도 창조해 낼 것이다. (ex-> 앞 덤블링, 뒷 덤블링 등)

 

머리를 골반까지 길러서 묶고 다닐 것이고 키 171.9~179cm정도에 몸무게 45~50kg 사이인 마른 체형일 것이다. 공부도 열심히 할 것이다.

 

- 6년후의 나의 모습-> 하버드대학 무용학과를 들어가 치어리딩을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고 여전히 치어리딩 국가대표로 활동할 것이다.

 

- 10년후의 나의 모습->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잠깐 휴식기 때 여행을 갖다오고 싶다. 가고 싶은 나라는 브라질, 영국, 미국, 중국, 일본, 태국, 캐나다등을 가보고 싶고 가서 즐겁게 놀고 관광도 하고 쉬고 싶다. 기간은 최소3주에서 많으면 두달정도 갔다 오고 싶다.

 

- 16년후의 나의 모습-> 치어리딩 국가대표를 은퇴하고 감독, 코치, 방과후 선생님 자격증을 따서 내가 어렸을 때 다니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그럼 감회가 얼마나 새로울까? 여전히 유연성을 늘리면서 취미로는 미용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치어리딩 후배들 시합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를 해주고 싶고 치어리딩 국가대표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많이 알리고 싶고 돈을 많이 벌면 후배들에게 쏘고 싶다.

 

활동에 지장이 없을 만큼 덕질을 하면 좋겠다. 또 양손잡이로 만들고 손톱 물어 뜯는 습관은 3년뒤(17)에 고쳐져 있을 것이다. 또 앞머리는 길러서 넘겨서 앞머리가 없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대(국가대표의 줄임 말)가 되어있고 싶다. 17살에는 예고에서 치어리딩을 하고 있을 것이고(아님 자사고) 나중에는 이민을 가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나라는 여행을 가본 나라중에서 나한테 맞는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 또 피부가 하얘져있었으면 좋겠다. 또 펭귄 2마리, 코알라 2마리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다.


 

(1, 박선진)

 

나는 10년 뒤에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대학교의 이름은 '서울대학교'이다. 난 일본어를 전공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어를 집에서 따로 한자를 독학하고 있을 것이고 일본어쪽으로 꿈이 있기 때문에 일본어 학원에 다닐 것이다. 물론 이때는 나 혼자 알바를 따로 하여서 학원비나, 신용카드 비용 등을 혼자서 부담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기왕 알바를 할 것이면 나의 또 다른 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아무에게나 말하지 않았지만 동물조련사나 동물원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고양이 카페라던지 애견카페에서 일하면서 동물을 더 알고 친해질 것이다. 또 내가 10년 뒤에는 24살이기에 재수를 하지 않는 이상 대학교4학년이기에 슬슬 직업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일본어 관련하여 무슨 일이 좋으며 어떤 일이 나에게 맞을 지 조금 더 진지하게 하고 있을 것이다.

 

중학교2학년 때부터 정식적으로 학원에 다니면서 일본어로 읽기, 쓰기, 말하기를 대학교 전까지 꼼꼼하게 준비를 하면서 대학교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생각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주말마다 공기 좋은 곳이라던지, 가고 싶었던 곳을 가면서 어느 정도 휴식도 취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직업은 일본어 번역가이지만 번역가가 되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하여 영어 실력도 조금 늘려 놓았을 것이다. 영어 실력을 늘려놔서 번역가가 되지 못한다면 통역사가 될 것이다.

 

대학교 4학년이기에 슬슬 졸업도 생각은 해 놓고 졸업도 준비할 것이다. 1학년 때부터 좋은 성적을 받고 수업에도 졸거나 빠지지 않을 것이다. 또 된다면 성우 관련 쪽으로도 가보고 싶다. 성우 관련쪽으로 가서 애니메이션 성우로도 해보고 싶다. 일본어로 되어있던 원작이 일본인 만화를 꼭 내 목소리로 바꿔보고도 싶다. 그 것을 위하여 고등학교때부터 탄산 음료라던가 목에 좋지 않은 음료, 음식을 피할 것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픽업이 되어서 일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또 대학생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름난 성우가 되고 싶다. 나의 꿈들이다~ 내가 일본만화를 보면서 생긴 것들인데, 그 나이가 되어서도 동심을 잃지 않고서 계속 일본 만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또 그때는 일본어 듣기 실력이 좋아져서 한국어 자막이 없는 걸로다가 일본어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 성우가 되면 되기 전에 방송국이라던가 등등, 유명한 성유를 만나거나 만나지 않고 넷상으로라도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성우가 어떻게 일하면서 자세히 더 알고 찾을 것이다. 성우가 되었을 때 다른 나라 특히, 일본성우를 만날 것이다. 그때 두개 전공을 하면서 두 개의 일을 동시에 하기보다는 '무엇을 더 먼저할까'고민할 것이다. 현재의 나의 성적으로는 서울안에 있는 대학교도 어렵기에 고등학교, 중학교2학년부터 더 열심히 공부를 할 것이다. 아니면 다른 직업이 무엇이 더 재미있을까 흥미를 갖기 위해서 일본어와 성우관련을 전공하면서 나와 다른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은 책을 많이 읽을 것이다. 또한 책을 읽거나 지인이라던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만약 관심 있는 것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볼 것이다. 또한 성우, 번역가, 통역사 이외에 다른 관련 업이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취미 생활로 굿네이버스라던가 그런 곳에서 모자뜨개질을 할 것이다. 뜨개질은 엄마한테 배워서 수준급은 아니지만 모자를 만들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난 행복할 것이다.


 

(1, 임지안)

 

십년 후 나는 24살로, 서울대학교에 다니며 우주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이다. 진로를 결정하는데 많이 고민을 했지만 오랜 고민과 생각 끝에 우주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쪽으로는 중학교 때 생각하였고 중학교때에는 우주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고 점점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흥미를 붙였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우주에 대핸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틀을 잡았다. 처음에는 과학에 대해 흥미가 많지 않았던 때라 조금은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책도 찾아 읽고 많이 알아보니 생각보다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서울대학교 우주 관련학과 교수님께 메일도 보내보면서 내 꿈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현재는 장학금을 받으며 좋은 성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동호회 친구들도 만나서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같이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꿈 꿔왔던 세계여행에 다녀왔다. 대학교에 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도 있고 힘들기도 하다. 이제는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못 읽었던 책도 읽고 있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우고 있다. 입학할 때 읽고 싶었던 책들을 모두 읽고 싶다. 그리고 또 앞으로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다. 되도록이면 넓은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다. 처음으로 가는 유학이라서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영어를 사용해서 힘들겠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 편해질 것이다. 그리고 유학을 위해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유학을 가기 전에는 취미 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갈 생각이다. 외국을 가면 그런 취미 생활을 많이 못하기 때문에 아쉽기도 하다.

 

내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 가끔씩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날 계획이다. 내가 처음 유학을 생각하게 된 것은 대학교 3~4학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우주와 관련된 일들은 외국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나의 또 다른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 여러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1, 이채린)

 

내가 십년후면 2027년이 된다. 딱 대학을 졸업하고 24살이다. 그럼 내가 서울대학을 졸업한 후인데 대학교때는 외국어와 경영학과를 전공하고 1년정도 더 공부를 하고 혼자 또는 가족이나 주변사람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갔을 것이다. (돈이 있다고 가정, 세계여행은 아니고)

 

첫 번째로 가고 싶은 나라는 프랑스이다. 이 쪽지연수에 참여한 내 또래 지안이가 프랑스에펠탑밑에서 돗자리를 깔고 밤하늘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솔직히 말하면 잔디가 좀 깨끗하면 돗자리를 깔지않고 앉아 있든 누워있든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하늘을 보고 싶다. 물론 그 아래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그리고 강금주선생님께서 얘기하셨는데 선생님께서 오로라를 보고 싶다고 하셨고 빨간머리앤이 나오는 장소도 가보고 싶다 하셨다. 오로라는 맨 마지막 여행때 보고싶고... 빨간머리앤이 나오는 장소에 갈 때는 머리를 빨갛게 염색해서 가서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다. ! 그리고 프랑스에 가면 음식, 옷 등을 이해하고 보고 사는 것은 물론이가 프랑스 축제에 1번 이상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소도 가보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가서 파스타를 먹고 강위에 배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고 싶다. 그리고 와플이 본고장인 독일에서(벨기에) 유명한 와플집에서 와플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걸 쓰는데 방금 내 옆에 앉은 허지우가 말한것인데 소금사막에 가는것이다. 맨발로 소금을 밟고 손으로 소금을 느껴본다.그리고 밤하늘이 예쁘다고 한 것 같은데 보고 싶다. (많이) 그리고 사해에 가서 수영복을 입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캠브리지 대학, 옥스포드대학이 있는 나라에 가서 한바퀴를 돌고 교수님이나 교장선생님과 인터뷰(면담)를 한다. 어떻게 오고 어떤 학생이 뽑히고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말이다. 또 세계 3대 축제 중에 하나인 브라질 삼바축제에 참여한다. 아니면 구경한다.

 

중국에 가면 징기스칸의 후예를 찾아 소젖을 짜오는 것이다. 전에 런닝맨에 한 번 나왔었는데 서로 얘기도 하고 꼭 해보고 싶어서이다. 또 내가 푸딩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푸딩의 본고장에 가서 유명한 푸딩을 먹고 오는 것이다. 케냐, 에디오피아에 가서 커피원두를 직접 내 손으로 만들고 콩도 따보고, 카카오 열매가 있는 곳에 가서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싶도 내 손으로 초코릿을 만들어 보고 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도 유명한 세익스피어가 살던 곳으로 가서 관련작도 찾아보고 박물관이 있으면 가보고 싶다. 오페라의 유령도 본다. 영국 런던에도 가봐서 브릿지도 건너면서 주변 풍경도 찍는다.(밤하늘) ! 이탈리아에 있는 피사의 사탑도 가고 그리스이 여러 신전들..(특히 건축물은 구조, 구도 등을 알고 싶다.) 골로세움도 가보고 싶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도 가고 브라질의 예수상도 본다. 이집트의 쿠푸왕이 피라미드 안에도 들어가 본다. 또 요리경연대회를 한다면 가장 유명한 요리들을 먹고 싶다. 심지어 내 입맛에 맞지 않을지라도...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에 가서 온천욕을 즐길 것이다. 미국의 디자니랜드도 간다. 음악회나 공연같은 것이 있으면 볼 것이고 피아노대회가 있으면 참석을 하거나 관중으로써 구경을 할 것이다. 필리핀에 가서 바나나도 따보고 망고도 따보고 그곳에서 직접 먹어본다.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도 걷고, 시골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집트에 가서 직접 낙타도 탄다. (투어, 체험-가이드를 따라서)일본의 삿포로 눈꽃축제도 간다. 아마존에 가서 그 동안 한 번도 못해봤던 체험들도 할 것이다.(동물보기 등) 아직 어디를 먼저 갈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이곳을 다녀와서 나만의 스토리(소설)을 써서 책으로 출간해 보고 싶다. 한국에(고향) 오면 선생님으로써 외국어를 가르치거나 피아노를 가르치고 늙으면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하고 산도 오르내리고 그동안 내가 경험한 것들을 책으로 써서 출간해 보고 싶다.

 

 

(1, 정원준)

 

내가 30살이 되는 해인 2033년 정도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아주 성공해 있을 것이다. 대학교를2023년에 가서 4년 동안 대학생활을 마치고 군대를 2년간 가면 2029년이 될 것이다. 그러면 4년이 남게 되는데 그때는 군대로 인해 없어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공부하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이 공부만 하기에는 길기 때문에 여가 또는 취미생활도 같이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30살이 되면 어느 정도 공부도 잘하고 컴퓨터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시기이니 슬슬 컴퓨터에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잘하게 된다면 간단한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 조금씩 돈을 벌면서 계속 경험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하다 조금씩 프로그램의 용량과 사용범위를 늘려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해서 더 생활이 편리해지게 하면서 그 동시에 돈도 벌면서 아주 뜻 깊은 인생을 살 것이다. 안철수도 백신을 만들어내 아주 많은 돈을 벌었는데, 나는 안철수보다 더 편리하고 더 낳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돈을 많이 벌 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지금 나와있는 좋은 프로그램들, 예를 들어 카톡, 네이버 등에 얘기를 하여 더 많은 기능과 더 편리한 서비스를 넣어보고 싶다. 이름이 알려지면 좋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편하거나 편리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일들을 한다면 너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고 바쁘고 쉴 시간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세워서 이루거나 큰 업적을 이룬 뒤에는 나의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일단 직업은 10년 정도 한다고 하면 40다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는 치매도 오고 머리도 나빠지고 동작도 둔해서 30대에 했던 일들이 훨씬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일단 30살부터 40대까지 일을 하면 10년 정도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꽤 많이 모일 것이다. 그 돈으로는 일을 하느라 못하거나 꼭 해보고 싶었던 사소한 것들, 때로는 맘먹고 비싼 것을 사서 경험을 해보고 싶다. 또 일을 할 때는 컴퓨터를 계속 하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를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한 자유시간을 많이 갖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또 하고 싶은 것은 컴퓨터로 취미생활하기이다. 예를 들어 게임, 유투브등을 하고 싶다. 내가 대학생활이 끝나면 남은 4년 동안 유투브방송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40대가 되더라도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유투브방송을 해보고 싶기 때문에 취미생활과 유투브 방송을 할 것이다. 40대여서 몸으로 막 움직이는 것은 무리인 것 같고 게임 같은 취미생활을 찍어서 올리고 싶다. 내가 내 인생에서 유투브 방송을 꼭 하고 싶은 이유는 원래 꿈은 유투브 크리에이터인데 컴퓨터에 관심이 가니 프로그래머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유투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도 버리고 싶지는 않아서 꼭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40대에라도 꼭 유투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


 

(1, 권구빈)

 

(과거의 운명은 받아들이고 오직 미래만 생각해라.)

 

내가 2027년에는 24살이다. 그러므로 군대에 가 있을 것이다. 가서 훈련을 하면서 화생방도 할 것이다. 재밌으면서도 힘들 것 같다. 아니면 군대 제대를 하고 내 할 일을 찾고 레고 디자이너가 되어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심어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꿈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그때쯤이면 중위정도 되어 제대를 하고 결혼은 누구와 할지 모르지만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을 수도 있을거다. 아니면 진짜로 레고 디자이너가 되어 내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많은 미팅을 통해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현재 상태에서 누구일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성격 좋고 예쁜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오직 나의 길만 가고 이게 어디로 튈지 모르고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외국에 여행을 할 수도 있고 고양이 2마리를 키우며 놀고 있을 수 있다.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이루어졌으면 한다. 나의 꿈만 오직 나의 미래만 바라보고는 살 수 없겠지만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실천하면서 나의 꿈을 받아들이고 운명을 받아 들일것이면 내가 결혼을 했을지 육사를 졸업했을지, 레고디자이너가 됐을 지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결혼을 하는 게 나한테 조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더 직업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고 꿈을 이루기 전에는 결혼을 한 뒤에 육사를 졸업(제대)를 하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내 마음이 무고 내 Wish를 이루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고양이 2마리를 키우고 싶다. 왜냐면 애완동물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키우고 싶었고 우리 엄마가 동물을 싫어해서 현재는 키우고 싶어도 못키우지만 10년 뒤면 내가 살 돈을 마련해 고양이를 키울 것이다. 그리고 나의 다음 wish는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나의 꿈은 레고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봤다시피 나는 아이들 동심을 심어주게 되지만 내가 이게 되고 싶어진 동기는 내가 어렸을 때 나의 부모님이 나를 안고 돌잡이를 할 때 칫솔을 잡았다. 하지만 4학년때까지만 해도 꿈이 외과의사다. 하지만 이 꿈은 날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운명을 따라간거지만, 하지만 이 꿈을 대상으로 생각해보니 나의 일상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초5학년초에는 내가 어렸을때부터 좋아했던 레고를 대상으로 해서 꿈을 찾아 레고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과거에 나는 레고를 조립하고 싶을 정도로 레고를 좋아했다. 하지만 우리 형만 계속 레고를 해서 나도 사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게 나의 진정 행복, 취미생활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레고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루고 나서는 해외여행을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직 나라는 유럽쪽으로 갈 것만 정했다. 그리고 이외에서 하고 싶은 게 더 많은 데 고르자면 호주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다. 왜냐면 호주는 우리나라 계절과 다르니깐 조금 색다르고 여름이니깐 수영도 하면서 즐기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 호주연수처럼 다양한 것을 하고, 다양한 것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님과 내가 직접 안내하는 가족여행도 즐기고 싶은 것도 있고 다양하지만 또 이렇게 호주여행을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과 함께 간다면 내가 안내도 하면서 즐거운 2027년이 지나갈 것이다.


(1, 최혜원)

 

나는 10년 후에 연세대학교의 의학과에 5년째 다니고 있다. 내가 내년 후에는 대학교 6학년이어서 거의 기초공부는 다 마친 상황이다. 그리고 1년 후에 연세대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 외과 병원에 레지던트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언니는 전문적으로 의사생활 4년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랑 언니랑 같이 아파트 한 개를 사서같이 생활한다. 그리고 2년 후에 나도 레지던트의 생활을 마치고 전문적으로 의사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이라고 어색한 나에게 언니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 그리고 언니랑 나랑은 서로 바쁘게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2~3년 후에 언니는 병원 한 개를 차려서 개인 병원을 만들고 아주 잘나가는 내과 의사가 되어 있다. 나는 언니가 개인 병원을 차리고 한 4~5년 정도 뒤에 개인 병원을 차린다. 그리고 나도 언니처럼 아주 잘나가는 의사가 된다. 내가 개인 병원을 열면 언니는 매주 일요일에 쉬고 나는 매주 토요일에 쉬어서 쉬는 날에는 내 취미활동이나 내가 잘하는 활동을 해서 몸을 쉬게 해준다. 그리고 오후 9~그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내 직업에 관한 책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한 번씩은 언니랑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가족 여행으로 해외여행을 간다. 그리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만 언니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너무 무서워해서 싫어해서 못 키우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봐줄 사람도 없어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랑 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같이 했던 동료들이랑 같이 해외여행을 가서 엽사나 얼굴 몰아주기 그런 사진을 한 장씩 찍어서 간직하고 인생샷도 찍고 착시현상이 나타나는 사진도 한 명씩 다 찌어서 간직한다. 그리고 외과 의사가 되면 밤을 새는 경우도 많아서 체력이 중요하니까 매일 아침마다 아침 운동과 아침 체조를 하고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출근한다. 그리고 몸이 무거우면 빠릿빠릿하게 못 움직이기 때문에 보통 체중을 유지 하며서 의사생활을 한다. 그리고 개인 병원을 차리면 조금 편한 생활을 한다. 그리고 환자들의 건강도 소중하지만 내 건강도 중요하다. 따라서 내가 의사니까 내가 나를 진찰하거나 의사인 우리 언니에게 진찰을 부탁한다. 그리고 개인 병원을 차리면 자는 시간도 많아지기 때문에 몸이 나를 안 따라주거나 몸이 내 말을 조종할 수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개인병원을 차리고 아주 유명한 의사가 돼서 대학교의 의학과에 가서 강의도 한다. 언니는 서울대학교 의학과에 가서 강의를 한다. 그리고 언니랑 나랑 한달에 한 번씩은 지방으로 내려가서 자원봉사도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자원봉사의 대상은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노약자거나 아픈데 시골에 살아서 서울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한달에 한번씩은 꼭 다른 지역으로 돌아다니면서 자원봉사를 한다.


 

(1, 허지우)

 

내 십년 후의 나의 모습은 한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승무원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 아빠가 '한세대학교'를 데려갔다. 그래서 그 뒤로 그 대학교가 가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는 승무원이 되면서 (대한항공)멋진 유니폼을 입고 인천공항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휴가때는 가족들과 여행을 할거다. 어디로 가고 싶냐면 호주 시드니로 와서 연수했던 경험을 생각하며 가족들에게 설명하면서 호주 여행을 하고 미국의 유니버셜을 가서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고, 가족끼리 일본 온천여행도 하고 프랑스에서 에펠탑앞에서 하루 종일 맛있는 음식과 추억의 사진을 찍으면서 가족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또 시간이 되면 한국에서 가족끼리 영화도 보고 길거리 음식도 먹고 하면서 즐겁게 놀고 있다. 휴가가 없는 날에는 계속 승무원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 맞다! 미국 여행을 갈 때 쪽지선생님께서 미국의 1위 고증학교를 PPT로 만들어 보여주셨는데 너무 멋있고 좋아서 꼭 한번은 가보고 싶다. (Phillips Academy Andover), 소금사막에 꼭 꼭 비오는 날에 가보고 싶다.

 

내가 어려서부터 쭉 키워보고 싶은 동물이 있는데 강아지, 고양이, , 슈가글라이더... 등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강아지가 꼭 키워보고 싶었는데 미래에서는 내가 강아지 2마리를 키우고 있다. 종류는 말티즈와 포메라니언 이나 비숑을 키우고 싶어해서 미래에는 키우고 있다. 어려서부터 나를 낳아주시고 예뻐해주시는 우리 부모님께 나는 효도하는 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해도 나는 계속 영어공부와 부족한 것을 다시 공부할 거다. 또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도 가고, 해외여행도 갈 것이다. 초등학교때 친구였던 베스트프렌드도 카페에서 만나 음료수를 시키고 or 커피를 시키고 하루종일 수다를 떨 것이다.

 

내가 옛날부터 좋아했던 박보건, 여자친구, 마마무가 있는데 팬 사인회에 가고 싶다. 팬 사인회는 어떻게 하는지 가서 보고 싶다.

 

또 어렸을 때 이모부가 야구장을 데리고 갔는데 그 뒤로, 기아를 좋아했는데 다시 가족끼리 야구장을 갈 거다.

 

나는 나중에 라식수술을 해서 안경을 벗고 살거다. 키도 많이 컸을 거구...

나는 직업이 승무원이라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비행기에서 하루종일 일해서 쉬는날이 거의 없지만 휴가날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특별하게 보낼거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서 그랬는지도 나도 겪어볼 때도 있다. 그래서 난 꼭 부모님께 효도하는 딸이 될 것이다. 가끔 휴가때 동생이랑 데이트를 하고 싶다. 동생이랑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영화도 보고, 장도 보고.. 가끔은 동생과 데이트도 할 거다. 막 생각난 건데...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 진짜 사막에 가서 피라미드도 보고 싶고 스핑크스도 볼 거고, 러시아, 캐나다, 브라질,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해외는 아니지만 제주도도 가고(제주도는 많이 가보았지만 제주도가 좋다.) 보홀섬에 또 가서 스킨스쿠버도 하고(자격증 실력) 가고 싶다.

 

내가 가봤던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을 또 가보는 이유는 어렸을 때 가본거랑 까먹을 수 있어서 다시 한 번 더 가고 싶다.(하지만 아직 안 가본 곳도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일은 2학년인가3학년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랑 편지쓴 걸 다시 한 번 더 읽으면서 엄마랑 대화도 할거다.(지금도 편지를 주고 받고 계속 하고 싶다.) 어렸을 때 추억을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거나 해보고 싶은 것, 어른이 되면 하고 싶다. 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루고 싶은 장래희망이(승무원) 꼭 되어 즐겁게 아름다운 세상을 살 거다!!


(6, 이호영)

 

-15년 후의 나의 모습

 

이제 판결하는 시간이 왔다. 피고는 몹시 긴장한 모습이었고 나는 이 피고가 무죄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판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드디어 판사가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피고는 정말 긴장했고 나는 피고의 무죄를 간절히 원했다. 판사는 이 사람이 사람을 한 대도 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는 그때서야 긴장을 풀고 나는 항상 억울한 사람들이 무죄가 선고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법원의 판결은 공정하고 정의롭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이 끝나고 나는 무죄가 선고된 피고를 다시 만났다. 검찰이 항소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소를 대비해 증거를 더 찾고 그 사람과 더 이야기를 했다.

밤에는 지금 민사소송을 건 억울한 원고를 만나러 갔다. 빌려준 돈이 1억이 넘는데 피고가 갚지 않아 민사소송을 건 것이었다. 나는 그 원고 집으로 가서 어떤 이유로 돈을 빌려줬는지, 안 갚은 지 몇 개월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문제가 증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증서가 있을 만한 곳을 둘러본다. 구석에 종이뭉치가 보였다. 그 중 하나가 증서였다. 이제 나는 피고를 협박하지만 않으면 승소할 수 있다고 원고에게 말해줬다.

 

나는 인권변호사를 한 2년 동안 포기하고 싶을 때가 10번 정도 있었다. 한달에 200만원 밖에 벌지 못할 때도 있었다. 생활비가 줄어들어 힘들었지만 그 때마다 더 힘들고 억울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일을 해왔다. 이제 정치를 하기 전까지는 꼭 인권변호사 일을 하겠다.

 

- 20년후의 나의 모습

 

사무실에서 오늘도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보통 그 사람들 집으로 간다. 그 억울한 사람들은 정말 가난하고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는 피고들, 억울하게 폭행죄로 기소된 피고들, 갑자기 돈을 갚으라며 당장 갚을 돈도 없고 술에 취하게 만들어 계약서에 사인하게 한 원고에게 시달리는 피고들 등 다양하다.

 

오늘은 억울하게 폭행죄로 기소된 한 피고의 변호를 하는 날이다. 그래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피고를 만나 어제 말했던 대로 솔직하기 진술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검사들이 표정을 보니 정말 저 피고는 유죄로 만들고 말겠다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피고가 겁먹은 표정으로 법정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너무 겁먹지 말라'라고 하고 전에 모은 증거자료들을 다시 정리하고 몇 분 후 판사가 들어왔다. 재판이 시작되고 피고에게 소송을 건 증인이 나왔다. 나는 증인의 진술이 끝나고 그 증인에게 몇 가지의 질문을 했다. 증인은 조금 당황해하며 더듬더듬 진술을 해 나갔다.

 

이후 검사가 피고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검사가 인적발언을 해 피고가 몹시 불쾌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판사에게 '지금 검사가 인적발언을 하고 있다'고 하고 판사가 검사에게 핮 말라고 하니까 피고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이후 변호사가 검사에게 질문을 할 시간이 왔다. 나는 검사에게 여러 증거를 보여주고 이 사람은 무죄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구형하는 시간이 왔다. 검사측에서는 징역5년을 구형했다. 내 생각에는 유죄라도 2년만 구형해도 될 것 같지만 조금 무겁게 구형했다. 나는 이 사람은 정말 억울하다면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6, 정주은)

 

15년 후의 나의 모습은 28살 일 것이고 대학을 다니고 성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일단 그때의 나는 여행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여행작가가 되기 위해서 나는 고려대의 언어과(국어국문학과)를 배웠을 것이고 여행작가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그 중 열심히 한 일은 시험기간에 모든 과목을 A를 받았었고 항상 손에는 책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시간이 있을 때는 항상 책을 읽었었고 여행작가과 관련된 것을 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좀 더 여행작가에 흥미를 가졌을 것이다.

 

또 대학교 때 내가 여행작가가 되어 갈 여행지도 정해두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등을 정해 놓았을 것이다. 또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교수님께 물어보고 친구에게 물어보는 등으로 열심히 준비했을 것이다.

 

여행작가가 되기 위해서 친구들과 배낭여행, 여행을 많이 다녔고 여행을 갈 때 필요한 준비등을 다 미리 알아두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배낭 여행 갈 때는 항상 내가 리더가 되어서 친구들을 이끌어 가고 길도 다 먼저 알아두어서 솔선수범했을 것이다. 또 궁금한 것이나 질문 같은 것을 나의 롤모델에게 이메일을 남겨서 답장을 받을 것이고 글을 써보는 연습을 많이 해서 글 쓰는 능력도 키웠을 것이다.

 

꿈이 여행작가인 친구와 함께 장기간으로 여행을 가서 더 많은 것을 알고 배웠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연습한 것은 글 쓰기 능력일 것이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면 글을 재미있고 어렵지 않게 써야 되기 때문에 제일 많이 연습했을 것이다. 여행작가가 되고 난 후의 삶은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초반때는 친구 또는 혼자서 여행을 다닐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 가서 허바드를 가고 시내를 탐방하고 다니거나 프랑스에 가서 에펠탑 아래서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구경한다던가 이탈리아에 가서 파스타, 스파게티를 먹어본다던지 그런 여행을 할 것이다.

 

친구와 배낭여행을 갈 때는 어디로 가던지 항상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책을 쓸 때 그것을 붙인다든지 증거로 해서 사용할 것이다. 50대 중반까지는 여행을 하면서 기록하고 재미나게 살고 60대에 들어가면서 책을 쓸 것이다. 책을 쓸 때는 가장 먼저 내가 보고, 듣고, 느낀점을 쓸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가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삼아서 책을 쓸 것이다. 책을 흥미롭고 재미있어야 하며 사실이어야 한다. 항상 책을 쓸 때는 진지하고 내가 느낀 것만 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에펠탑아래서 하늘을 봤을 때의 나의 느낌, 그 때의 감정등으로 쓸 것이다. 내가 책을 쓸 때에는 머릿말(인사말)에 내 소개를 쓸 것이다. 그러면서 내용을 쓸 것이다. 책을 완성하면 먼저 가족에게 보여주고 출판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실수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먼저 검토를 하고 출판할 것이다.

 

책을 한 권이라도 완성한다면 나는 나의 꿈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마음 편히 쓸 것이다.

 


 

(5, 홍지운)

 

제목 : 나의 평범한 일상

 

나는 25년후의 미래 일기를 쓸 것이다. 2042 8 9, 날씨 : 그럭저럭 괜찮음

 

25년 전 나는 십대들의 쪽지 호주어학연수에 있었다. 그때 강금주 선생님, 김쪽지 선생님, 김한빛 선생님, 김선미 선생님, 진민옥 선생님임이 계셨다. 그 연수에서 나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이다. 모든 선생님들께서는 항상 저녁강의뿐만 아니라 꿈을 심어 주셨다. 그래서 그 말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일 것 같다.

 

나는 현재 의사로서의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교는 서울대학교에서 4, 6년 대학원, 4년 레지던트의 노력 끝에 나는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전문의가 되었다.) 나의 스케쥴은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하고 5시에 집을 나선다. 진료는 일반적으로 730분부터 시작이기 때문에 5시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주로 한다.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아침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그러면 약 630분에 병원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는다. 7시부터는 진료준비를 하고 진료는 주로 5시에 끝난다. 그 후에는 수술이 많이 잡혀있다. 나는 심장내과 의사이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나는 대학교(내가 원하는)에서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그래서 대수술을 해도 전혀 힘들지 않다. 대부분 2~4명 정도 수술을 하면 끼니를 제대로 채우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25년 전 원하고 있던 꿈을 이루었기 때문에 항상 즐겁다.

이렇게 환자들 수술이 끝나면 주로 집에 간다. 매년 했던 나의 다짐인 '매일 조금이라도(한 페이지라도)독서하기' 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그렇게 하루 일과가 끝나면 1130분 정도가 된다. 나는 그 시간에 잠이 든다.

 

응급환자가 없는 날에는 휴일에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가까운 공원에서 놀거나, 좋아하는 스포츠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같이 TV를 시청한다. 그래도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꾸준히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25년 전 나에게 한 약속(다짐), 부모님의 노력, 십대들의 쪽지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 중 십대 때 나에게 가장 힘이 된 말, 인상 깊은 말은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포기하고 싶고 '왜 내가 이 힘든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십대들의 쪽지에서 알려준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끈임 없이 노력 한 덕분에 나의 인생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나는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여기서 끝내는 것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한 포기하지 않는 한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평생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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